[김순덕의 도발]文정권에선 왜 펀드사기 줄줄이 터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15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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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주 정경심 재판에 나와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딸의 운명이 걸린 입시 비리 혐의만이 아니다. 사모펀드 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형사소송법148조만 되뇌며 입을 다물었다.

딸을 의사 만들겠다고 교수 부부가 별별 일을 다 했다는 검찰 발표는 자식 가진 모든 이의 공분을 자아냈다(문파와 조빠 빼고). 하지만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블루코어밸류업 같은 사모펀드 용어가 등장하면 복잡해서 관심줄 놓기 십상이다. 조국의 탁월한 점이 바로 이거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조국흑서)’에 참여한 권경애 변호사에 따르면 조국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전 정부가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최순실의 미르재단처럼 재벌들과 거래해 돈을 빼내는 식이었다면, 사모펀드는 권력에 연줄을 대 국책사업의 보조금을 따내는 사업권을 획득할 기회를 얻는 것.” 쉽게 말해 사모펀드는 돈과 권력을 잇는 빨대요, 86그룹 집권세력이 업그레이드시킨 부패인 셈이다.



● 뇌물 대신 펀드로 돈 버는 권펀유착
여기서 잠깐. 암만 복잡해도 펀드 기본용어는 알아야 감이 잡힌다. 펀드엔 공모(公募)펀드와 사모(私募)펀드가 있는데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진입장벽도 낮고 규제도 낮다. 정경심이 관련된 코링크PE, 대규모 환매 사태가 일어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사모펀드 운용사다. 사모펀드를 발행해 모은 자금을 기업에 투자하고 수익금은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조국흑서에 따르면, 조국의 계좌에서 나간 8500만 원이 코링크PE 설립자본금에 쓰였다고 한다. 코링크를 설립한 조국의 5촌 조카 조범동의 공소장에 나오는 얘기다. “코링크는 처음부터 조국의 돈으로 세워진 회사”라는 게 참여연대 출신 회계사 김경율의 주장이다.

그들만 아는 미공개정보는 권력이자 돈이다. 다시 조국흑서에 따르면, 코링크는 서울시지하철 공공와이파이사업권을 따내려 만든 회사로 봐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 특히 민정수석실은 정보를 취급하는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모펀드가 투자하기 좋은 기업정보를 알 수 있다. 청와대 실세가 사모펀드에 이름을 감춘 채 국책사업으로 보조금을 받는 사업체에 투자함으로써 ‘이해충돌’을 자행한다는 데 김경율, 권경애 같은 진보단체 출신이 공분을 못 참고 나섰던 셈이다.

● 라임·옵티머스에 어른대는 권력 그림자
라임, 옵티머스 등 최근 줄줄이 터진 사모펀드 사건에도 이런 신(新)정경유착, 아니 권펀유착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라임 사태란 국내 1위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이 사모펀드 환매 중단으로(쉽게 말하면 파산) 4000여 명의 투자자가 1조6679억 원을 날린 것을 말한다.

‘쩐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어마무시한’ 로비 대상에 청와대 행정관, 여당 의원들이 등장하는데 이 정도 ‘뒷심’에 금감원이 투자원금 전액 반환이라는 전례 없는 조치를 내렸을 것 같지가 않다.

옵티머스펀드에 투자해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7월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 앞에서 검증 없이 상품을 판매했다며 판매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옵티머스펀드에 투자해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7월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 앞에서 검증 없이 상품을 판매했다며 판매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옵티머스 사태는 공공기관에 투자한다며 사모펀드를 발행해 5300억 원가량을 모은 옵티머스 자산운용사가 실은 서류를 위조해 부실기업에 투자했다는 사건이다. 야당은 옵티머스를 설립한 이혁진 전 대표를 놓고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럴 줄 알고 증권범죄수사단 폐지했나
임종석 대통령외교안보특보와 대학 동기(한양대 86학번)이고, 서류 위조 혐의의 윤모 변호사의 부인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었다. 이혁진은 2018년 3월 검찰 조사를 받다 홀연 출국해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아랍에미리트 순방 장소에서 사진까지 남겼음에도 여태 소환되지 않는 괴력을 발휘했다.

금융경제범죄는 과거 정권에서도 권력형 비리나 정치권과 연결된 경우가 적지 않다. 김대중 정부 때 이용호 게이트, 이명박 정부 때 저축은행 사태와 비교하면 작금의 펀드 사태는 첨단 투자기법을 활용해 훨씬 세련되게 변모한 셈이다. 그렇다면 금융전문수사는 더욱 앞서가야 마땅한데도 이 정부의 충실한 법무장관 추미애는 올 초 취임하자마자 증권범죄수사단 폐지를 전격 발표했다.



●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나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인 김종민 변호사는 “특히 라임이나 옵티머스 사태에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적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폐지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7월에 개최한 세미나 ‘범죄의 온상이 된 사모펀드’에서 “검찰수사를 무력화시키려는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나온 것도 당연하다.

86그룹 집권세력은 ‘이해충돌’ 관련에서 유독 미성숙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전대협 시절 기수와 학번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이권으로 뭉친 이들 운동권 네트워크에선 국정의 사사화, 공직의 사유화에 죄의식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책사업 관련 미공개정보를 움켜쥔 이들이 이름을 감추고 사모펀드에 투자해선 혈세 보조금을 빼먹어도 국민은 알 방법이 없다. 정부가 투자처를 콕 찍어주는 뉴딜펀드가 불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 7월까지 1년간 환매 중단된 펀드가 22개, 피해 규모는 무려 5조6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사모펀드 만기가 돌아오면 얼마나 더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김경율은 7월 사모펀드 세미나에서 “각종 펀드들이 투자했다는 돈의 실체와 최종 귀착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대체 그 많은 돈들이 어디로, 누구에게 갔는지 언제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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