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 수행처 ‘지장암’ 복원 “불교계 정신적 유산 되살린 것”

서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7-31 03:00수정 2020-07-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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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 책으로 전해지던 토굴 복원
경허 스님 수행처인 지장암을 복원한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 현판 글씨는 옹산 스님이 직접 썼다. 서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무너진 집터에는 주춧돌 서너 개만 남아 있을 뿐 아무런 흔적도 없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경허가 홀로 머무르던, 지장암(地藏庵)이라고 불려지던 토굴의 옛 자리임이 분명하였다.’

우리나라 선(禪)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스님(1849∼1912)의 삶을 다룬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의 한 대목이다.

이처럼 책과 구전으로 전해지던 충남 서산 천장사 지장암이 최근 복원됐다. 암자는 건평 60m², 주변까지 합하면 331m²에 이른다.


지장암을 복원한 천장사 회주(會主) 옹산 스님(전 수덕사 주지)은 “(지장암) 주변 연암산은 높이가 해발 441m로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해 쉽지 않은 불사(佛事)였다”며 “천장사가 신도가 없는 사찰이라 여러 스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장암 복원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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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암은 토굴로 불리던 작은 암자였지만 경허 스님에 얽힌 일화들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 불교사의 기념비적 공간이다.

‘길 없는 길’에 따르면 이곳에서 겨울 엄동설한을 지내며 정진하기로 결심한 경허 스님은 비바람이 들이치는 토굴을 수리한다. ‘화엄경’ ‘법화경’ ‘법구경’ 등 경전들을 뜯어내 낡은 토굴의 문과 벽을 도배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 “저 성스러운 부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벽과 바닥을 발라 도배 장판하여도 된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거리낌 없는 무애행(無애行)으로 잘 알려진 스님의 파격이 이어진다. “어디에 부처님의 말씀이 있단 말이냐. 더 남은 부처님의 말씀이 있으면 가져오너라. 종이가 모자라 아직 바르지 못한 벽이 많이 남아 있다.”

세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옹산 스님은 역병과 관련한 경허 스님의 일화도 들려줬다. 경허 스님은 젊은 시절 충남 천안의 한 헛간에서 발심(發心)했다고 한다. 역병(疫病)으로 주변에 시신이 즐비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론적으로는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모두 소용없다’며 한탄했다. 가던 길을 돌아간 스님은 강원(講院)을 해체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화두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옹산 스님은 “(경허) 선사는 이곳에서 비지떡 같은 이들이 득실거려도 전혀 개의치 않고 용맹정진했다”며 “선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지장암 복원은 우리 불교계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되살린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서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산#천장사#옹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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