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길 굽이굽이 백제의 숨결 솔솔

글·사진 부여=김동욱 기자 입력 2020-07-11 03:00수정 2020-07-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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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충남 부여
산자락 사찰-옛 연못 운치 가득… 고도 걸으며 사진찍기 좋아
부소산성 걷다보면 백마강 절경, 새벽녘 무량사 종소리 긴 여운
가림성 사랑나무는 인생샷 명소
충남 부여 임천면 가림성(성흥산성)에는 ‘사랑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왼쪽)가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족, 연인들이 이 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날씨가 좋으면 논산, 강경, 익산, 서천까지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부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충남 부여는 경북 경주와 함께 수학여행 단골 방문지다. 이 때문에 ‘낡은’ ‘오래된’ ‘추억의’ 같은 수식어가 부여 앞에 붙는 경우가 많다. 다시 방문하려 해도 한번은 가봤던 곳이고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2, 3순위로 밀리곤 했다. 하지만 그만큼 잘 모르는 곳이 부여이기도 하다. 고도(古都)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여유를 느끼기 좋은 곳이다. 부여의 재발견 여행을 떠나보자.》



자박자박 걷기 좋은 부여




능산리고분은 백제왕들의 무덤군으로 모두 7기의 고분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시대 무덤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나성(사적 제58호)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성이다. 전체 모습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동아시아 외곽성이다. 총 길이는 6km로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동쪽과 북쪽으로 부여 시가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능산리사지를 출발해 천마산성으로 향하는 북쪽 방향과 필서봉으로 가는 남쪽 방향을 선택한 뒤 천천히 나성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복원이 아직 안 된 곳도 있지만 그 자체로도 자연스러운 백제의 흔적이 느껴진다.
부소산성은왕궁의 후원과 비상시 방어성의 역할을 했다. 부소산 정상 높이는 해발 106m로 부소산성을 한 바퀴 도는데 1~2시간이면 된다. 부소산 정상에서는 백마강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부소산성은 왕궁의 후원과 비상시 방어성의 역할을 했다. 부소산 정상 높이는 해발 106m로 부소산성을 한 바퀴 도는 데 1∼2시간이면 된다. 부소산 정상에서는 백마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인 낙화암은 백마강 건너편에서 보면 그 기암절벽이 잘 보인다. 낙화암을 배경으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낙화암으로 유명한 부소산성은 왕족이 산책이나 사냥을 즐기던 왕궁의 후원과 비상시 방어성 역할을 했다. 부소산 정상은 해발 106m 정도로 가고자 하는 코스를 골라 부소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부소산에서 제일 높은 사자루와 백마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백화정을 목적지로 삼는다. 여름에는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 더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부소산성 주변은 아직도 발굴 중인 현장이 많다. 어떤 유물이나 새로운 역사적 증거물품이 나올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낙화암 바로 아래 고란사까지 내려가면 구드래 선착장까지 가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 낙화암은 부소산 서쪽의 낭떠러지 바위다. 부소산성에서는 보이지 않고 백마강 건너편으로 가면 잘 보인다. 백마강 건너편은 대부분 넓은 공원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도 드문 편이라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성인 나성은 총 길이 6km로 전체의 모습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동아시아 외곽성이다.

만수산 자락에 위치한 무량사는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극락전, 석등, 오층석탑 등 많은 보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언제 찾아도 호젓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부여 만수산 자락에는 무량사(無量寺)가 자리 잡고 있다. 산 이름 ‘만수’와 절 이름인 ‘무량’ 모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음’을 뜻한다. 그 이름처럼 오랜 시간 도를 닦을 수 있는 공간 같다.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국사(810∼889)가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불에 탔지만 다시 세워졌다. 크지 않은 사찰이지만 극락전(보물 제356호), 석등(보물 제233호),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미륵불 괘불탱(보물 제1265호) 등 귀한 유물이 남아있다. 무량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찾아도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대웅전 앞이나 돌담에 앉아 주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된다. 새벽과 저녁 예불 시간에 울리는 무량사의 종소리는 긴 여운을 남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사찰 주변 산에 안개가 끼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감상할 수 있다.

궁남지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무왕 때 연못을 파고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들여 그 한가운데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연못은 1960년대 복원했다.
궁남지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무왕 때 연못을 파고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들여 그 한가운데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연못은 1960년대 복원했다.

부여읍 동남리 궁남지는 백제 무왕 때 연못을 파고 8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들여 그 한가운데 섬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연못은 1960년대 복원된 것이다. 매년 7월 화려하게 만개한 연꽃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궁남지는 이른 아침이나 비가 올 때 운치가 더해진다.

장암면 장하리 마을 밭 가운데에 소담스럽게 자리 잡은 장하리 삼층석탑은 고려 때 한산사라는 절이 있던 곳에 세워진 높이 4.85m의 백제계 석탑이다. 1931년과 1962년 두 차례 해체 수리할 때 범문 다라니경 조각, 상아로 만든 불상, 금동사리병 등이 발견됐다. 주위 풍경은 특별한 건 없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 덕분에 시간을 두고 석탑과 주위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이런 게 진정한 여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인생사진을 선물하는 부여


가림성(성흥산성)은 백제 수도 사비를 방어하기 위해 금강 하류에 만든 산성 중 하나다. 산성에 앉아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준다.


가림성(사적 제4호·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은 멋진 인생사진을 남기고 싶은 연인이나 부부에게 강력 추천하는 명소다. 성흥산(해발 268m)에 자리 잡아 성흥산성으로도 불린다. 가림성은 백제의 성 중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다. 501년 백제시대에 산 정상에 쌓은 산으로 당시 둘레가 1.3km, 높이 4m에 달했다. 현재는 성곽 일부와 우물터 등이 남아있다. 임천면사무소부터 걸어서 올라가도 좋지만 자동차를 타고 가림성 근처까지 이동할 수도 있다. 주차장에서 10∼15분만 걸으면 정상에 닿는다. 가는 길 마지막 구간은 경사가 급하고 길이 험하다. 정상에 거의 다 오를 때쯤이면 왼편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가림성(성흥산성)에 위치한 사랑나무라 불리는 커다란 느티나무는 많은 연인들이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는 낭만적인 여행지이다. 이곳에서 둘러보는 주변 풍경도 아름답다.

그 오른편에는 ‘사랑나무’라 불리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랑나무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어 성흥산의 상징으로 불린다. 높이가 약 22m로 수령은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사랑나무 옆에 서면 날이 좋을 땐 논산, 강경, 익산, 서천까지 보인다. 이 나무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다. 낮게 지면에 깔린 나뭇가지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걸어놓은 가방과 옷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사랑나무의 유래는 나무 오른쪽으로 고개를 숙인 커다란 나뭇가지에서 비롯했다. 자세를 조금만 낮춰 나무를 보면 나무기둥과 가지가 절묘하게 절반의 하트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반쪽 하트 사진 좌우를 반전시킨 뒤 두 사진을 합쳐 완전한 하트 모양을 만든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일몰 때는 사랑나무와 사람의 실루엣이 아름답게 나와 인생사진 촬영으로 인기가 높다. 사진을 찍은 뒤에는 주변을 한 바퀴 산책 삼아 둘러봐도 좋다.



각양각색 석불을 품은 부여

성흥산 자락에는 대조사(大鳥寺)라는 사찰이 있다. 백제 성왕(재위 기간 523∼554년) 때 창건됐다. 전설에 따르면 한 노승이 큰 불상을 세우기 위해 불공을 드리던 중 깜빡 잠이 들었는데 황금빛 새가 날아와 큰 바위에 내려앉는 꿈을 꾸다 깨어 보니 큰 바위가 불상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황금빛 큰 새가 축복을 가져다주었다’는 뜻을 기리기 위해 대조사로 불리게 됐다. 경내 뒤편에 높이 10m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인 석조미륵보살 입상(보물 제217호)이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커다란 바위 하나에 머리와 몸체를 새겨 만들었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보살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몸체는 뭉툭하고 얼굴은 넓적하다. 얼굴은 득도한 표정이 특징인 티베트여우를 연상시킨다. 신체 비례는 5등신에 가깝다. 계속 보고 있으면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친숙한 느낌에 괜스레 손이라도 맞잡고 싶어진다.

정림사는 사비시대 백제의 중심사찰이었다. 현재는 정림사지 한 가운데 위치한 오층석탑과 뒤편에 복원한 전각이 남아 있다.
한 노승이 바위 밑에서 수도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꿈에서 새가 앉은 바위가 미륵보살로 변했다고 해서 대조사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대조사 뒤편에는 높이 10m에 달하는 석조미륵보살이 서 있다.

정림사지에도 특이한 모습을 한 석불이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뒤 전각 안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08호)이 그것이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화재로 인해 심하게 마모돼 장식은 없고 형체만 남아 있다. 머리와 갓은 후대에 복원했다. 몸통은 두 손을 가슴에 얹은 근엄한 모습이다. 얼굴은 우리가 아는 부처의 표정이 아닌 석공이 대충 만든 듯 투박하다. 하지만 푸근한 인상과 어색한 미소에 계속 눈길이 간다. 석불이 앉아 있는 대좌는 꽤 정교하다. 석불보다 더 공들여 만든 것처럼 보인다. 부여를 다녀온다면 두 석불의 묘한 표정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글·사진 부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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