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문명 전환… 이젠 휴대전화 포함 오장칠부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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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주지 5연임 정념 스님

월정사 주지실이 있는 심검당(尋劍堂) 앞의 정념 스님. 2018년 건립한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에 대해 스님은 “과정은 어려웠지만 산중 불교, 한국 불교가 가야 할 길이었다”며 “월정사와 명상마을이 일종의 타운을 형성해 도시인들에게 힐링과 명상, 수행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월정사 주지실이 있는 심검당(尋劍堂) 앞의 정념 스님. 2018년 건립한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에 대해 스님은 “과정은 어려웠지만 산중 불교, 한국 불교가 가야 할 길이었다”며 “월정사와 명상마을이 일종의 타운을 형성해 도시인들에게 힐링과 명상, 수행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해 12월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산중총회는 정념 스님(64)을 만장일치로 주지 후보로 추대했다. 2004년 첫 주지를 맡은 정념 스님이 4년 임기의 주지 5연임에 성공한 것.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통합 종단이 출범한 뒤 본사 주지의 5연임은 처음이다.

월정사는 조계종 내에서 산중 사찰을 유지하면서도 대중과 호흡하는 ‘열린 불교’의 상징으로 꼽힌다. 월정사가 2004년 시작한 단기 출가학교는 연등회, 템플스테이와 함께 불교계 3대 히트 상품으로 유명하다. 삭발하고 1개월간 출가자처럼 생활하는 출가학교는 3000여 명의 수료자를 배출했고, 이 중 300여 명이 출가했다. 일주문부터 이어지는 전나무 숲,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9km 길이의 선재길은 대표적인 힐링 코스다. 사찰 내 여러 선원(禪院)이 복원 또는 개원했고, 2018년 월정사 인근에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이 들어섰다. 월정사에서 정념 스님을 25일 만났다. 1980년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올해 출가 40주년을 맞는다.

―20일 선재길 명상 축제가 열렸다.

“산중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치렀다. 올해 17회째를 맞았는데 비가 오락가락하는데도 1000여 명이 참석했다. 걷기와 명상, 음악, 영화가 어우러지는 행사였다.”

―단기출가학교, 문화축제, 자연명상마을 등 획기적인 시도가 많았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찰이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정사와 선원, 자연명상마을, 성보박물관 등이 일종의 문화 타운이 돼야 한다. 단기출가학교와 각종 문화행사, 복지 시설 운영은 핵심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월정사의 변화, 자평한다면 몇 점인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방향은 맞지 않았나 싶다. 낙제는 면해 70점 정도….(웃음)”

―다섯 번 연임이 화제다.

“그동안 해 왔던 불사(佛事)를 좀 더 완성하라는 교구 스님들의 요청이 아닐까 싶다. 공동체의 뜻을 모아 산중 사찰의 미래를 열어가고 싶다.”

―중앙종회 의원과 본사주지협의회장 등 종단의 주요 소임을 두루 경험했다. 불교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큰 장점이 있다. 화엄사상은 미래와 디지털 사회, 정보문명, 우주적 거시까지 품어낼 수 있다. 소통의 문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상성도 있다. 현대인들이 디지털과 사이버 문화 속에서 살아가지만 완전한 인간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명상과 수행 문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개인은 물론 국가와 국가가 닫히는 ‘신(新)내셔널리즘’과 장벽 쌓기가 전망된다. 불교의 상생과 공존의 문화가 더욱 필요한 시대다.”

―신도가 크게 줄고, 종단과 출가자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졌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1차적으로 스님들 책임이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 공업(共業)의 소산이다. 시대를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불교를 만들지 못했다. 아니, 따라가기에도 급급했다.”

―종단의 백년대계본부장도 맡고 있다. 백년대계, 그 출발점은 무엇인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종단 정체성, 교학과 수행 체계, 총무원과 본사의 역할…. 미래를 위한 ‘그랜드 디자인’이 나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단 구성원들의 원만한 합의다.”

―40년 전 삭발한 날의 기억이 생생한가.

“시절 인연으로 주지를 맡았는데 전생에 빚이 많은 것 아닌가 싶다. 경허 스님 행장을 보면서 출가하면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삶을 살고 싶었지, 엄격한 중노릇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선사들의 자유자재한 모습, 그게 나의 로망이었다.”

―좋아하는 경구를 들려준다면…?

“‘증도가’ 중 재욕행선지견력 화중생련종불괴(在欲行禪知見力 火中生蓮終不壞)라는 구절이 있다. ‘욕망 속에서 참선하는 지견의 힘이여, 불 속에서 연꽃이 피니 끝내 시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실은 우리들 삶의 현장이다. 이것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진정한 무언가를 구현할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에 대한 걱정이 많다.

“지금의 위기는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보화 시대에선 휴대전화로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휴대전화가 소통이니까. 오장육부(五臟六腑)는 이제 휴대전화를 포함해 오장칠부, 육장육부로 바뀌었다. 문명의 전환기다. 불교를 포함한 모든 주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그럭저럭 당장의 위기는 모면해도 결국 화석이 될 것이다.”

○ 정념 스님은…

△1980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7년 중앙승가대 졸업
△1992년 오대산 상원사 주지
△2004년∼ 월정사 주지
△2012년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환수에 기여해 국민훈장 동백장
△2015년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2018년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건립
△2019년 조계종 백년대계본부장
△상원사 청량선원 복원, 월정사 만월선원과 북대 상왕선원 개원

평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오대산#월정사#주지#정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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