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 평가기준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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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기준 확정 3일만에 서둘러 공고… 세부 평가항목 배점도 제시안해
접근성 등 입지 조건에 50점 배점… 수도권에 인접한 후보지 유리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 취지 살려야”… 유치 경쟁 일부 지자체 우려 표명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예상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의 예상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은 총 사업비 1조 원이 들어가며 2027년까지 방사광가속기 및 부속시설을 갖추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예상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의 예상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은 총 사업비 1조 원이 들어가며 2027년까지 방사광가속기 및 부속시설을 갖추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전국 5개 광역자치단체가 유치 경쟁을 벌이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에서 공모계획 평가 기준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평가 기준이 갑작스럽게 공고되고 평가 지표 선정 과정도 불투명한 데다 위치나 접근성에 관한 평가 요소가 많아 특정 지역에 유리하도록 정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은 국비 8000억 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 1조 원을 들여 2027년까지 방사광가속기 및 부속시설을 갖추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현재 경북도-포항시, 전남도-나주시, 충북도-청주시, 강원도-춘천시, 인천시 등이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다.

○ 입지 조건 항목에 평가 점수의 절반 배점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 부지 유치 공모 계획 평가 항목과 기준을 공고했다. 기본 요건(25점), 입지 조건(50점), 자치단체 지원(25점) 등이다. 하지만 일부 자치단체와 학계에서는 장기 로드맵을 발표하고 평가 기준을 확정한 지 3일 만에 서둘러 공고한 데다 평가지표 선정도 자치단체 의견 수렴 등 절차 없이 이뤄졌고 세부 평가 항목에 대한 배점을 제시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열린 온라인 설명회에서 세부 평가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평가 기준은 부지선정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된 것으로 변경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치나 접근성에 관한 평가 요소를 과다하게 높게 책정한 것도 논란이다. 총 50점의 배점이 부여된 입지 조건의 경우 6개의 세부 평가 항목 중 ‘시설 접근성 및 편의성’ ‘현 자원 활용 가능성’ ‘배후도시 정주 여건’ 등 3개가 위치나 접근성을 위주로 평가하고 있다. 연구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인접한 후보지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표다.

지난달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전국에서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는 연구원 33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7% 이상이 접근 편의성(8.6%)보다는 품질경쟁력과 장비 및 인력 확보 등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이 접근성은 평가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했지만 이런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광주지역의 한 이공계 전공 교수는 “방사광 가속기는 접근성이나 입지 조건보다는 성능과 운영 품질, 국가 균형 발전 등이 더 중요한데 지리적 여건에 의한 단순 입지 조건만 따지면 국내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치 목적과 동떨어진 평가 항목 없애거나 줄여야”

유치 경쟁에 뛰어든 일부 자치단체도 우려를 표명했다. 전남도는 평가의 공정성이 확보할 수 있도록 8개 평가 항목 및 14개 세부 요소의 배점과 평가 방법을 공개하고 접근성이나 현재 보유 자원 등 가속기 설치 목적에 맞지 않는 평가 항목을 삭제하거나 대폭 축소해줄 것을 건의하기로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부지 기본 요건 및 주요 평가 항목이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둔 것처럼 의혹을 자초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신뢰를 해치는 일”이라며 “전문가와 자치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재공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방출되는 고속의 빛을 활용해 초미세 세계를 분석하는 장비다. 신약 개발, 미세로봇 제작 등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응용과학, 공학,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현재 경북 포항에 3·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운영하고 있지만 성능 저하와 시설 용량 한계 등으로 늘어나고 있는 연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는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산업에 활용도가 높은 대형 가속기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신규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29일까지 유치계획서를 접수한 뒤 5월 7일 후보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인천시, 최소 부지 확보 못해 사실상 포기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나선 자치단체들은 저마다 최적지임을 내세우며 홍보전을 벌이고 있다. 경북도는 기존 방사광가속기의 전력, 상하수도 등 시설과 이용자 숙소, 가속기과학관 등의 부대시설을 공유할 수 있어 1000억 원 이상의 사업비를 절감할 수 있고 사업 기간도 1년 정도 단축할 수 있어 최적지라고 판단한다. 전남도는 2022년 개교할 예정인 한전공대를 중심으로 호남권 대학과 방사광가속기가 연계되면 첨단 연구 역량을 높일 수 있고 전국 최하위 수준인 호남권의 연구개발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충북도는 청주시 오창이 단단한 암반지대여서 방사광가속기 구축에 기본인 지질학적 안정성이 높고 교통 편의성도 뛰어나 방사광가속기 구축의 적지라고 홍보하고 있다. 강원도는 지역 일자리 창출과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춘천 유치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폈다. 홍천 메디컬연구단지 및 원주 의료기기사업과 연계하면 막대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천시는 연세대가 송도국제도시에 추진하는 사이언스파크에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을 추진하다가 정부가 25만 m² 규모의 부지를 갖춘 지역을 적지로 판단하면서 유치를 사실상 포기했다.

무안=정승호 shjung@donga.com / 포항=장영훈 / 춘천=이인모 기자
#다목적 방사광가속기#구축사업#평가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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