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악[Monday HBR]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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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작한 직방은 원룸과 오피스텔 정보 서비스에서 시작해 지금은 아파트와 빌라까지 부동산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이용자 기준 국내 최대 부동산정보 앱으로 성장했다. 누적 앱 다운로드 수는 2019년 말 기준 2800만 건, 회원 등록된 중개사무소는 4만여 곳에 이른다. 필자는 2015년 합류해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을 내부에서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큰 행운이었다. 직방이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는 많은 요인이 있었겠지만, ‘A·B테스트’를 강조하는 마케팅 활동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마케팅팀은 기획 단계에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낸다. 그중 가장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다듬어 가설로 채택한다. 그 가설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비교군(A군)과 대조군(B군)을 만들어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이것을 A·B테스트라고 부른다. 이런 테스트로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마케팅 활동을 진행한다. 단순히 훌륭한 성과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가설 수립과 검증을 통해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성공의 공식을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것이 바로 직방의 ‘퍼포먼스(성과) 기반 마케팅’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보자. 직방은 네이버 포스트, 카카오 1boon 등의 콘텐츠 채널을 운영 중이다. 이 채널들을 통해 매일 부동산 전문가 칼럼을 연재하고 그 안에 광고 배너를 넣어둔다. 그런데 이 광고 배너의 디자인과 제목 문구에 따라 클릭률이 큰 차이를 보인다. 마케터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클릭률 차이를 보이는 배너들을 비교하고,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를 매일 분석한다. 분석의 결과로 도출된 가설을 바탕으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배너를 중심으로 광고를 운영한다. 그러다 그 효율이 한계효용 체감의 그래프에 따라 완만해지는 시점에 또다시 무수한 A·B테스트를 통해 최적의 배너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유튜브 채널 운영 역시 마찬가지다. 초기 직방의 유튜브 채널은 여느 기업의 유튜브 채널처럼 대량 광고 집행 시즌마다 제작하는 자체 광고 영상을 저장해두는 수준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2017년 ‘직방TV’로 이름을 바꾸고,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정보 전달 채널로 ‘피보팅(전환)’했다. 이후 수많은 A·B테스트를 통해 유튜브 구독자 수와 조회 수와의 관계, 유튜브에서 잘 먹히는 섬네일(제목 화면) 만드는 법 등을 찾아내는 성과를 냈다.

직방이 A·B테스트를 통해 찾아낸 매력적인 유튜브 섬네일 제작 공식은 다음과 같다. ①긍정적 요소보다는 부정적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②평면적으로 내용을 설명하는 문구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문구가 더 효과적이다. ③문구에 구체적인 숫자가 포함될 경우 더 효과적이다. ④타깃 시청자가 명확한 경우, 섬네일에 명시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세운 가설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실험을 거듭한 결과, 지금은 메이저 언론사들이나 대형 건설사들이 운영하는 부동산 유튜브 채널을 압도하며 구독자 19만 명(2020년 3월 기준)을 모았다. 구독자 기준 전체 부동산 채널 가운데 4위다.

그렇다면 이렇게 끝없는 A·B테스트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그 핵심은 수평적 조직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설을 낸 사람이 주니어급 마케터이든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이든 상관없이 설득력만 있다면 동등하게 실험대에 오르고 A·B테스트가 진행된다. 그리고 테스트의 결과와 숫자만 겸허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어떤 팀원이 결과적으로 빗나간 가설을 제시했거나, 반대로 채택된 가설을 제시했다는 것은 크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설사 뚜렷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실패한 가설은 앞으로의 실험에서 배제할 수 있다. 즉, 마케터에게 소득 없는 실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직방 마케팅팀에서 죄악시되는 유일한 한 가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원고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20년 3·4월호에 실린 ‘마케터의 실험, 가장 큰 죄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류성락 직방 마케팅팀 콘텐츠파트 리드 ryu@zigbang.com
#직방#가설#a·b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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