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악마의 거래’…암호화폐가 키우고 암호화폐가 잡는다

  • 뉴스1
  • 입력 2020년 3월 27일 1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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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 2020.3.25/뉴스1 © News1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 2020.3.25/뉴스1 © News1
“이 암호화폐 지갑으로 돈을 보내라.”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 등 여성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24)씨는 박사방에 가입하려면 최대 200만원 가량의 암호화폐를 요구했다. 희대의 성착취 영상을 보기 위해 회원들은 너도나도 송금했다.

보통 송금하면 ‘은행계좌’가 떠오르겠지만 이들은 ‘암호화폐 지갑’을 이용했다. 은행하면 거래내역이 고스란히 털릴 게 뻔하고 이름부터 ‘암호’인 코인거래를 이용하면 이같은 은밀한 ‘악마의 거래’도 ‘완전범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법하다. 과연 그럴까.

◇‘탈중앙성’ 내세운 암호화폐…박사방 확장에 일조했다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기능하기 위해 탄생했다.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지난 2008년 ‘비트코인 백서’로 불리는 논문을 통해 비트코인을 ‘누구도 신뢰할 필요가 없는 완벽하게 분산화된 통화’라고 정의했다.

사토시는 정부와 금융기관 등 기성 권력을 불신하며 새로운 경제질서를 세우고자 비트코인을 출시했다. 이후 비트코인의 문제점을 보완한 여러 암호화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암호화폐는 5261종에 달한다.

비트코인은 기존 금융거래의 대명사인 ‘은행’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송금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중앙은행이 필요없기 때문에 국가 간 장벽도 문제되지 않는다. 시중 은행과 달리 송금 의뢰인과 수취인의 이름도 남지 않는다.

n번방은 암호화폐의 ‘익명성’을 악용했다. 박사방은 영상시청(채팅방 입장) 대가로 비트코인, 모네로 등 암호화폐를 받았다.

조 씨는 암호화폐가 국내·외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를 보며 범죄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암호화폐는 공공연하게 마약 구매 등 범죄자금으로 쓰여왔다. 일례로 2019년, 국내에 거주하는 37세 남성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인터넷을 통해 68회에 거쳐 대마 227g을 구매해 검거된 바 있다. 이 남성은 2000만원 어치의 대마를 비트코인으로 구매했다.

디지털의 발전으로 범죄수단도 디지털을 이용한 지능형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 n번방 사건도 디지털의 발전으로 컸다. 그 중심에 암호화폐는 물론, 텔레그램같은 메신저 서비스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n번방 참가자, 암호화폐 거래내역으로 잡을 수 있다고?”

그러나 IT 기술은 범죄를 위해 발전하지 않았다. 암호화폐의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도 ‘탈중앙화’를 주장하지만 반면 ‘투명성’을 강점으로 한다.

블록체인은 ‘체인’처럼 연결됐다. 비트코인의 모든 거래는 특정 중앙서버가 아닌 ‘블록체인’이라는 단일 공개장부에 기록된다. 이 장부는 시스템에 참가하는 이용자의 컴퓨터에 분산, 공동 관리된다.

블록체인은 거래가 기록되는 과정에서 수정, 삭제 등 이상현상이 감지되면 쉽게 잡아낼 수 있다. 이에 블록체인 기술은 ‘투명하다’고 평가받는다.

비트코인 거래기록도 모두 블록체인 상에 기록된다. 거래기록은 지갑주소(일종의 은행계좌)만 알면 누가 얼마만큼의 암호화폐를 거래했는지 웹사이트를 통해 알 수 있다. 지갑 주인의 ‘실명’만 공개되지 않을 뿐이다.

암호화폐도 은행처럼 보관할 ‘계좌’가 필요하다. 이를 ‘지갑’(월렛)이라고 칭한다. 지갑은 암호화폐를 보관하고 입·출금하는 용도로 쓰인다. 암호화폐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지갑주소는 영문 대소문자와 숫자를 무질서하게 섞은 30자~40자 문자열로 구성됐다.

일반적인 투자자는 간편한 거래를 위해 암호화폐 거래사이트가 제공하는 지갑을 쓴다. 회원가입만 하면 주어지는 주소로 복잡한 생성절차가 필요 없다. 일부 보안을 강화하고 싶은 투자자는 ‘메타마스크’ 등 온라인을 통해 계정을 만들거나 USB형태의 지갑(하드월렛)을 이용하기도 한다.

지갑주소는 은행계좌처럼 개인이 노출을 결정할 수 있다. 암호화폐를 입금받을 일이 없다면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위 사진은 비트코인 거래내역을 조회할 수 있는 웹사이트 ‘비티씨닷컴’을 통해 워런 버핏의 비트코인 지갑(3AsXDKX1etLgegepVeJbhj7WeZiypVMgdt)을 조회한 결과다. 버핏 회장의 은행계좌와 잔고를 알 수 없지만 웹사이트를 통해 그의 암호화폐 재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셈이다.

버핏 회장은 현재 1.015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다. 아래에는 그가 비트코인을 주고받은 25건의 거래기록(Transaction)이 적혀있다. 내역을 살펴보면 보낸사람의 지갑주소가 공개됐다.

숫자와 문자로 구성된 이 주소는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지갑주소가 국내 암호화폐 거래사이트를 통해 만들어진 주소라면 실명을 확인할 수 있다.

◇수사협조 발벗고 나선 ‘암호화폐’ 거래사이트들

대다수 국내 거래사이트는 회원가입 시 최소한의 신원확인(KYC)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암호화폐를 거래하기 위해서는 시중은행이 발급한 실명계좌와 거래사이트의 온라인 지갑을 연동해야 한다. 간편결제 서비스에 신용카드를 연결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조주빈은 박사방(유료방) 입장을 위해 자신의 암호화폐 지갑 일부를 공개했다. 업계에 따르면 조 씨는 최소 10개의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박사방 참가자들은 암호화폐를 구매하고 송금하는 과정에서 국내 거래사이트를 거쳤을 것이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그의 지갑 거래내역을 역추적하고, 보낸사람의 지갑주소를 확보해 국내 거래사이트와 대조한다면 n번방 참가자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박사방 사건과 관련해 지난 13일 국내 암호화폐 거래사이트 3곳(빗썸, 업비트, 코인원)를 압수수색했다. 이어 19일 대행업체 베스트코인, 21일 비트프록시에 수사협조를 요청해 관련 자료를 확보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업계가 범죄자의 배를 불리고 송금과정에서 얻은 수수료로 자신의 배도 불렸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래사이트는 암호화폐가 불법적인 자금으로 쓰이는 지 알지 못한 채 거래를 중개하는 역할을 한 것 뿐이다.

n번방 사건으로 국내 암호화폐 거래업계도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그러나 ‘불법’으로 치부된 암호화폐가 오명을 벗고 양지로 올라올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사이트(가상자산 사업자)를 ‘금융회사’로 보고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과 테러 자금조달 규제를 위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도 통과된 상태다.

빗썸, 업비트, 코인원은 “수사기관 요청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디지털 성범죄가 하루빨리 근절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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