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소득 콩 한쪽도 나눠먹어야” vs “가뭄에 물 몇 방울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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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3월 27일 0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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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국민 주머니에 현물을 꽂아주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이 전 국민에 지급돼 나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보편적인 생계안정대책은 오히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에 ‘한가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위기란 당장에 소득이 사라지고, 앞길이 막막해진 계층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소득이 안정된 계층에 흘러갈 재정의 물길을 사각지대에 있는 계층에게 돌리지 않으면, 언제든 고사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7일 <뉴스1>이 재난기본소득 관련 경제·사회학자 4인의 의견을 들은 결과, 보편적인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인터뷰에는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백승호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이 회장과 성 교수는 거시경제, 백 교수는 복지, 박 교수는 노동 분야를 전문으로 한다.


◇“다 나눠주면 ‘가뭄에 물방울’ 될 수도”


노동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박지순 교수는 보편적 지원에 대해 “월급이나 자산이 있는 계층까지 현물을 나눠주게 되면 부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 필요한 분에겐 가뭄에 물방울 몇 개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박 교수는 “지금은 모든 이들에게 돈을 조금씩 줄 정도로 그렇게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며 “피 같은 재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재정을 공평하게 나눠주면 실질적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교사례로 언급되는 미국처럼 우리나라는 돈을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성태윤 교수는 “재난 상황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이들에게 지급하려는 건 생각보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단 모든 분들께 돈을 주면 조금씩 나눠줄 수밖에 없다”며 “모든 계층을 지원하면 좋겠으나 돈이 없다. 작년도 재정을 다 쓴 데다가 올해 세수결손에 재정상황이 좋지 않다”고 지목했다.

이인호 회장도 “지금 상황은 돈을 무차별하게 주면서 평등을 얘기할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정부는 대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내놨고,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것 다 좋다. 다만 재정지출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저소득층은 작년부터 (기초연금 확대 등)강화된 지원이 들어갔고 일부 새로운 직종인 배달업 등은 호황이다. (취약계층)거기에 돈을 더 쓸 필요는 없다”면서 “한정된 재원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위기 상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보편적 지원은 더욱 어렵다. 이 회장은 “우리가 기축통화국도 아니니 돈을 계속 찍어내게 되면 오히려 국가부도 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며 “그 재원은 아껴야 한다. 경기가 회복될 때 또 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대상선별 어렵다는 핑계는 공직 책무 위반”

취약계층 선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 기본소득 개념을 가져가자는 주장에도 대다수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지순 교수는 “취약계층 선별이야말로 공직자들이 할 일”이라며 “기초생활수급자, 기초연금수급자를 포함해 기존 데이터베이스가 있을 것이고 일자리 미달된 청년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사각지대를 조사해 지원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차라리 선별 행정을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갑자기 기본소득 개념을 들고 와서 재난 구호금에 적용하겠단 건 무책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반대로 누가 더 취약하고 덜 취약한지를 구분하는 일이 효율적이지 않으므로, 기본소득 지급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백승호 교수는 “취약 정도를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며 “현재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는 식으로 정부가 골라내기 힘들다. 효율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비용뿐만 아니라 사회 갈등을 비롯한 ‘사회적 비용’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백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한국 국민은 복지 경험 비율이 낮아서 취약계층 복지를 한다고 했을 때 중산층 이상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들다”며 “중산층이 느낄 때, 나도 힘든데 국가가 일부만 지원하면 국가 존재의 이유를 못 찾게 된다. 그 결과는 결국 취약계층에게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 교수는 “장기적으로 보면 (선별 지급은 중산층의) 복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촉발해 복지 정책에 도움이 안 된다”고 부연했다.

◇기본소득은 재난구호금과 달라…“미래에 재논의해야”

그렇다고 복지와 취약계층 보호를 중시하는 진영에서조차 기본소득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최근 추진되는 재난구호금 성격의 소득 지원이 기본소득 개념을 끌어오면서 혼동이 일고 있고, 이는 오히려 미래 복지체계 완성에 해를 끼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박지순 교수는 “기본소득 도입은 일종의 사회보장제도 전면 재구성으로, 사회보장에 대한 지금까지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복지체계는 기본적으로 취약계층을 골라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선별복지에 훨씬 가깝다. 또 산업화를 거치면서 노동자 중심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로 각 지자체에서 급작스레 기본소득을 추진하는 것은 이러한 선별형·노동자 중심의 복지체계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한계에 부딪혔다는 함의를 갖는다.

박 교수는 “산업구조가 바뀌고 노동시장도 자영업자,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등 절반은 전통적 노동자고 절반은 그렇지 않은 새로운 서비스 산업 종사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며 “이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범용성을 갖춘 사회안전망을 새로 구축하는 논의가 이번 사태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절박한 과제”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코로나 사태 이전까진 범용적 사회안전망 구축을 이론적으로만 얘기해 왔다면, 이젠 이분들을 위한 재난 소득보장제도를 사회안전망 중심축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사회계층을 포괄하는 안전망 구성을 긍정적으로 재검토할 때”라고 촉구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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