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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의 보이스피싱[횡설수설/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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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의 보이스피싱[횡설수설/이태훈]

이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0-03-26 03:00수정 2020-03-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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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민정인데요. 예전에 통화한… 잘 모르시겠어요? 그럼 사진 하나 보내드릴까요?”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무작위로 뿌려진 문자다. 40만 명이 문자를 열어봤고, 한 달 후 이들의 요금 청구서에선 2990원의 정보이용료가 빠져나갔다. 호기심으로 열어본 사람이 많았겠지만 자신의 ‘과거사’에 불안을 느낀 이들도 상당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든다. 초기 노년층, 주부 등이 주로 당하다가 의사, 법조인, 금융권 관계자 등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넘어가는 것을 보면 학력이나 지식보다는 심리적인 차원임을 알 수 있다. 갑자기 추궁이나 협박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인간의 불안 심리를 노린 것이다.

▷그런 보이스피싱이 느닷없이 이른바 ‘박사방’ 사건에도 등장했다. 여성들을 협박해 제작한 성 착취 동영상을 텔레그램에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손석희 JTBC 사장과 윤장현 전 광주시장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사기를 친 혐의를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성범죄 사건에 난데없이 보이스피싱이 불거진 것은 어제 아침 검찰에 송치되면서 언론에 얼굴을 드러낸 조주빈이 뜬금없이 손 사장과 윤 전 시장을 피해자로 거명했기 때문이다.


▷어제 오후 손 사장이 밝힌 입장문에 따르면 조주빈은 자신이 흥신소 사장이라며 손 사장에게 텔레그램으로 접근했다. 조주빈은 프리랜서 기자인 김웅 씨가 손 사장 가족들을 해치기 위해 행동책을 찾고 있고 자신에게 이미 돈까지 지급했다며 협박했다고 한다. 손 사장은 ‘뺑소니 논란 사건’ 등과 관련돼 김 씨와 법적 분쟁을 벌이던 사이였다. 조주빈은 손 사장으로부터 1000만 원 정도를 송금받은 후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김 씨가 손 사장 가족 위해를 사주했다는 조주빈의 주장은 거짓으로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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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사기꾼에게 속아 4억5000만 원을 송금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조주빈이 “JTBC에 출연해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사기를 쳤다. 윤 전 시장은 지난해 8월경 서울 모 기관을 사칭한 ‘최 실장’이란 사람의 전화를 받았으며, 정체불명의 최 실장과 함께 JTBC를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동영상 촬영을 강요하고 착취한 ‘박사방’ 범죄의 발상이 구설수에 휘말린 유명인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든 보이스피싱에 변형돼 적용된 듯하다. 그 악질성과 간교함이 치를 떨게 한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박사방#보이스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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