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씻기, 성공 비즈니스의 출발점[육동인의 業]〈3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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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1516년 어느 날 이탈리아 베네치아 당국은 유대인들을 칸나레조라는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리고 250년 동안 다른 지역과 분리된 채 살게 했다.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이라는 뜻의 ‘게토’라는 말이 세계에서 처음 사용된 곳이다. 베네치아 게토는 인구밀도가 높았다. 다른 지역의 4배에 달했다. 하지만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의 사망률은 신기하게 다른 지역의 절반에 불과했다.

유대인의 생존력은 14세기 중세 때 이미 빛을 발했다. 1346∼1354년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흑사병이란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무려 2억 명. 그러나 유대인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너무 멀쩡하다 보니 ‘너희들이 흑사병을 퍼뜨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유대인에 대한 마녀사냥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다.

생존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오랜 율법에 따라 생활습관이 된 ‘손 씻기’다. 유대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루에 최소 9, 10번은 손을 씻는다. 게토의 엄마들은 손을 자주 씻는 것만으로도 아이 배탈의 90%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하기 훨씬 이전의 얘기다. 게다가 매주 안식일 전에 목욕을 하고, 집안을 늘 깨끗하게 청소하는 등 청결을 중시하는 위생수칙을 지켜왔다.

먹는 것도 그랬다. 유대인의 독특한 음식문화인 ‘코셔’도 핵심은 역시 위생이다. 코셔는 음식의 형태가 아니라 재료를 선택하고 다루는 법. 예를 들어 돼지는 아예 먹지 못하고 소, 양 등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고통 없이 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게 깨끗하게 도살해야 먹을 수 있다. 박쥐 같은 야생조류는 아예 식용 금지다.

인구가 적은 마을에서는 가축 도살을 종교지도자인 랍비가 직접 담당했을 정도로 도살 방법을 중시했다. 그런 전통 때문에 미국 보건당국은 지금도 유대인 푸줏간은 아예 위생 조사를 면제해준다. 먹을 것을 가리는 탓에 상점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식품 중 어느 것이 코셔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주는 인증 사업까지 번창하고 있다.

낯선 곳에 갈 때 개인용 식기와 수저를 싸 가지고 다닐 만큼 위생과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의료 분야는 매우 중요한 영역일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육신을 고치는 의사는 정신을 치유하는 랍비와 같은 존경을 받았다. 실제 현대인의 생명을 연장해준 많은 약들이 자기들 손에서 탄생했다는 게 큰 자랑이다. 혈액형 구분법은 물론 인류 최대의 의약 기적으로 평가되는 페니실린,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 소아마비백신 등 유대인들이 만든 의약품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코로나19로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위생’과 ‘건강’이라는 단어가 향후 변화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란 점이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비즈니스도 그렇다. 흑사병 이후 자본주의가 싹트기 시작했고, 우리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직후 정보기술(IT) 등 신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한 경험이 있다. 커다란 위기는 새로운 산업의 태동을 예고한다. 미래 유망 직업의 관점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손 씻기#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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