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국면에 생각해보는 교육의 더 나은 미래[광화문에서/김희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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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2014년 12월, 정부는 입학과 새 학기 시작을 기존 3월에서 9월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국제 교류를 활성화하고 인구 감소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교육계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가을학기제가 논의된 자리는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발표문 제목도 ‘2015년 경제정책방향’이었다.

자연히 반박 논리 역시 경제 측면에서 전개됐다. “돈이 10조 원씩 든다는데 굳이?”, “숭고한 교육 문제를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보다니”, “국제 교류로 얻는 이익보다 시스템 개편에 드는 비용이 더 많다”는 반발이 이어지면서 가을학기제 시도는 무산됐다.

5년 뒤인 2019년 12월, 이웃 나라에서 감염병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권에 들었다. 우리도 세 차례에 걸쳐 개학이 5주나 연기됐다. 코로나19 진행 상황에 따라 개학은 더 미뤄질 수도 있다.

학부모들은 가뜩이나 감염 우려로 불안한데, 개학이 기약 없이 한두 주씩 미뤄지니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감까지 호소한다. 자연스럽게 곳곳에서 가을학기제 얘기가 나온다. 이번에는 경제 논리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디딘 위기감에서 나왔다는 게 5년 전과 다른 점이다.

교육계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이는 학부모만이 아니다. 등록금을 10년 이상 동결하면서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재정 의존도가 높아진 대학들의 위기감은 생사를 가르는 수준이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중국인 유학생이 오지 않는 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무섭다. 미국, 유럽에서 오는 교환학생과 중동, 아시아에서 오는 국비 장학생들이 막히기 시작하면 조만간 교직원 월급 못 주는 대학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2주간의 개강 연기 끝에 16일부터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교수와 학생들은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강의 인프라와 수준에 좌절한다. 강의를 잘한다고 대학본부에서 상을 수차례 받은 한 교수는 2시간짜리 강의를 이틀에 걸쳐 찍고 나더니 “나는 초딩 유튜버보다 경쟁력이 없고, 대학은 중고교 방송반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위기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유학생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학은 재정구조를 바꿀 방안을 고심하거나, 유학생을 확 끌어올 당근을 찾아낼 것이다. 초등학생보다 뒤진다고 느낀 교수는 뉴미디어를 공부하면서 강의를 업그레이드할 방법에 골몰할 것이다. 가을학기제를 ‘돈 드는 일’이라고 반대했던 이들도 이 시점에서 가을학기제를 적용했을 때의 득실을 다각도로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스티브 잡스의 혁신 비결에 천착한 작가 카민 갤로는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좋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호시절에는 누군가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던지면 “한가한 소리 하고 앉아 있네”라고 콧방귀를 뀌기 십상이다. 그만큼 발전도, 혁신도 더디다. 위급한 시기에는 파괴적인 발상과 시도를 해도 한가하게 혀를 찰 사람이 없다. 그래서 위기는 발전의 자양분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코로나19#교육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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