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장’ 비례 공천,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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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비례후보 당선권 앞 순위에 소수정당 4개 중 2개 정당만 배정하기로 했다. 후보 적격성 문제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하지만 여당의 거부권이 작용했다고 한다. 여당이 추천한 비례후보들은 “왜 여당 후보가 ‘듣보잡’ 뒤에 있나. 비례정당 앞 번호를 달라”고 주장했다.

더불어시민당 합류를 거부한 ‘열린민주당’ 출범으로 선거판은 더 혼탁해졌다. 열린민주당 비례후보엔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전 청와대 대변인과 조국 사태로 기소된 전직 청와대 비서관이 이름을 올렸다. 법무부에서 검찰개혁추진단장 등 요직을 꿰찼다가 두 달 전 사퇴하고 비례후보가 된 민변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검찰총장 등을 적시한 명단을 만들어 ‘검찰 쿠데타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친문 호위무사’ ‘조국 수호’를 자처하며 친문 팬덤에만 기대려는 정치공학적 발상이다.

비례위성정당 창당이라는 꼼수의 문을 먼저 연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 간의 분란도 정상적인 정치 체제에선 생길 수 없는 파행이었다. 정당의 고유한 정강·정책은 아예 관심이 없고 측근 챙기기와 자파 입맛에 맞는 비례후보를 내는 데만 골몰하다 보니 ‘가설 정당’의 추한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비례정당은 득표율 3%만 넘으면 의석을 얻을 수 있다. 거대 정당 구도에서 소수정당 진출을 유도하고 다양성을 높인다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당초 취지와 달리 우리 사회의 극단적 세력을 지지층으로 삼은 정파들이 비례의석으로 원내 진출할 길을 열어주는 양상이 됐다. 열린민주당 등이 독자 창당한 것도 강경 지지층만 있으면 의석 진출 가능성이 있다는 표 계산을 한 결과일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선거가 어려운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을 발탁해 다양한 분야의 민심을 국정 운영에 반영하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지역구에서라면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웠을, 국민 눈높이를 벗어난 특정 정파 대변자 수준의 편향된 인사들이 누더기 선거법을 악용해 원내에 진출한다면 비례대표제 정신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민통합보다는 진영 대결과 편 가르기가 더 가속화될 수 있다.
#비례대표제#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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