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 모두 잃기 전 악보 파일전환 마무리되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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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암투병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의 희망가
지인 도움으로 1년 전부터 작업… “아직도 트럭 1대분 이상 남아”

‘그리운 금강산’ 작곡자 최영섭 씨가 그의 집에 소장 중인 수기 자료 악보들을 가리키고 있다. 광원아트홀 제공
‘그리운 금강산’ 작곡자 최영섭 씨가 그의 집에 소장 중인 수기 자료 악보들을 가리키고 있다. 광원아트홀 제공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 씨(91)의 음악을 기리려는 프로젝트가 그의 고향 인천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일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M빌딩 9층 ‘광원아트홀’ 사무실 대형탁자 위에는 최 씨의 수기 악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벽면 쪽의 소형탁자 위엔 디지털 기록 작업을 마친 악보들이 파일 형태로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대형탁자에 널려 있는 악보 중에서 윤이상 작곡, 최영섭 편곡이란 글이 적힌 ‘달무리’라는 곡이 눈에 띄었다. 광원아트홀에 근무하는 음악 전문가가 여러 장으로 편성된 ‘달무리’의 5선지 원본 악보들을 ‘스코어’ ‘피콜로’ ‘클라리넷’ ‘바순’ ‘바이올린’ ‘첼로’ ‘베이스’ 등 20개 파트별로 나눠 연주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록을 하고 있었다.

최 씨의 집(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쌓여 있는 수기 악보 원본들을 이 같은 형태로 정리하는 디지털 분류 작업이 광원아트홀에서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최 씨와 40년 넘게 ‘음악 인연’을 맺으면서 광원아트홀 운영을 후원하고 있는 정지연 광원건설 대표(68)가 지난해 초부터 사비를 들여 악보 아카이브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최 씨 자택에는 아직 정리 못 한 수기 악보가 트럭 1대분 이상 남아 있다. 최 씨는 “국내외 가곡 가운데 편곡한 500여 곡 중 상당수를 정 대표에게 부탁해 기록하고 있다”며 “아직 정리하지 못한 악보들이 기악 독주곡, 실내악곡, 칸타타, 가곡 등 여러 장르”라고 전했다.

아흔 살 넘도록 10년 넘게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작곡과 편곡 일을 멈추지 않고 있는 최 씨는 고향 인천을 잊지 않고 찾는다. 그와 정 대표의 인연도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정 대표를 포함해 30여 명이 참여한 ‘인천음악애호가협회’가 인천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 등지에서 매달 음악감상회를 열 때 최 씨가 음악 해설을 맡았다. 그는 인천음악애호가협회의 음악감상회와 동아일보 산하 동아문화센터의 동아음악감상회를 20년 넘게 진행했다.

광원아트홀은 2007년 9월 문을 열면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추모음악회를 열 때 최 씨에게 음악 해설을 맡겼다. 그는 광원아트홀 개관 10년 기념음악회뿐만 아니라 2년 전 자신의 구순을 맞은 나눔음악회 때 연달아 인천 무대에 올랐다.

인천문화재단과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모임(아여모)’은 2018년 12월 인천 서구 엘림아트센터에서 최 씨가 작곡한 대표 음악을 들려주는 무료 음악회를 열었다. 아여모는 최 씨 활동을 돕기 위한 후원기금을 3년 넘게 모으고 있다. 새얼문화재단도 2018년 ‘새얼 가곡과 아리아의 밤’ 정례 음악회 때 구순을 맞은 최 씨의 투병을 응원하는 시민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최 씨는 “지난해 수술을 받고 난 이후 베토벤처럼 청력도 거의 잃어가고 있다”며 “여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만큼 도움을 많이 준 고향 인천을 위해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그리운 금강산#작곡가 최영섭#광원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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