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앨범 30장 준비, 난 ‘음악 빌딩’ 부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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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상서 생애 첫 공로상 받은 김수철

음악가 김수철은 “아직도 음악을 잘 모르겠다. 공부가 멀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음악가 김수철은 “아직도 음악을 잘 모르겠다. 공부가 멀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자, 남산에서 레이저가 내려옵니다. 이게 31빌딩으로 발사되면 웅장한 클래식 테마가 짜자자잔! 이제 레이저는 63빌딩으로 갑니다. 국악 장단 등장! 빛은 다시 63빌딩에서 쌍둥이빌딩으로. 테마는 뉴에이지풍으로 바뀌죠. 자, 모든 빌딩 옥상엔 50대의 스피커를 설치…. 빛이 남산으로 돌아갈 때! 록이 합류하고 모든 장르가 융화돼 ‘콰과광’ 때려 부수는 겁니다!”

1987년, 경기도 모처에서 비밀리에 열린 ‘서울 올림픽 전야제’ 연출 회의. 당시 30세의 음악가가 도면을 설명하자 좌중이 웅성거렸다.

“‘이 모든 장면은 헬기 8대를 띄워 상공에서 중계한다!’ 그러니까 미친놈 소리를 들은 거죠. 흐하.”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살롱 문보우’에서 만난 김수철(63)이 파안대소했다. 그 입에서 금방이라도 “치키치키차카차카”가 쏟아져 나올 듯하다.

“더 중요한 건 아직도 제가 그 꿈을 안 버렸단 거예요. 히히.”

그는 “코로나19와 싸우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사태가 호전돼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공연이 열린다면 1987년에 구상한 저 연출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수철이 생애 처음 공로상을 받았다. 지난달 열린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다. 그는 “과대평가해주시니 큰일 났구나 싶다”고 했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젊은 그대’ ‘정신 차려’ ‘나도야 간다’ 등 숱한 히트곡. 국내 최초로 100만 장 이상 팔린 사운드트랙인 영화 ‘서편제’를 비롯해 ‘황천길’ ‘팔만대장경’ 같은 국악과 서양음악의 만남.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음악. 1986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1988 서울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등 국제 행사 음악…. 김수철이 새긴 궤적은 경부고속도로처럼 장쾌하고 미스터리 서클처럼 신비롭다.

“국악 공부를 한 지 올해로 꼭 40년이에요. 대금 소리 발견하는 데만 10년이 걸렸죠.”

2002년, 유엔본부 총회의장에서 10분 넘는 ‘기타산조’를 뿜어낸 순간을 그는 못 잊는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각국 대표자들을 앞에 두고. 그해 낸 ‘기타산조’ 앨범에 장구, 대금, 가야금과 12현 전기기타의 대화를 담았다. 기타로 산조에 도전한 것은 1986년부터다.

“국악 신작을 녹음할 때마다 긴장과 기대가 교차했어요. 이 분야에서는 롤모델이 없었으니까요. 억지 접목이 아니라 진짜 조화를 원했거든요.”

왼쪽부터 김수철이 음악과 주연을 맡은 영화 ‘고래사냥’(1984년) 포스터, 김수철 솔로 1집(1983년) 재킷, 영화 ‘칠수와 만수’(1988년) ‘서편제’(1993년) 사운드 트랙. 김수철 제공·동아일보DB
왼쪽부터 김수철이 음악과 주연을 맡은 영화 ‘고래사냥’(1984년) 포스터, 김수철 솔로 1집(1983년) 재킷, 영화 ‘칠수와 만수’(1988년) ‘서편제’(1993년) 사운드 트랙. 김수철 제공·동아일보DB
스스로 꼽는 대표작은 ‘황천길’(1989년)과 ‘불림소리 마’(1992년). 그는 “황천길은 태평소를 컴퓨터 음악과 붙여 솔로 악기로 끄집어냈고, ‘불림소리 마’는 국악 타악을 주연으로 세운 뒤 외국 타악까지 아우른 것으로서 평생의 보람된 작곡이었다”고 돌아봤다.

김수철은 ‘팔만대장경’(1998년)을 작곡하며 말로 먹던 술, 하루 몇 갑씩 피우던 담배를 뚝 끊었다. 취미라곤 음악뿐. 이날도 오전에 기타 연습을 두 시간쯤 하고 나왔다고 했다. 솔직히 외롭지만 이 길뿐이라고.

“창고에 쌓인 신작이 앨범 20∼30장 분량은 돼요. 빌딩 한 채 없는데 음악 빌딩은 무지하게 쌓았죠. 포크, 록, 솔, 클래식…. 장르별로 10년간 신작을 낼까 해요.”

진짜 빌딩을 사뒀다면 초저녁에 갑부가 됐을 터다. 1990년대 초, 국제행사에서 억대의 작곡료를 받았다. 100억 원대에 김수철 음악 전곡의 권리를 사겠다는 ‘회장님’도 있었다.

“작품 하나 내면 1, 2년간 두문불출해 공부하고…. 그게 저의 자양분이었어요. 세상 돌아가는 데 밝았다면 음악가가 아니라 사업가가 돼 있을지 모르죠.”

그는 요즘 케이팝의 선전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아쉽다고도 했다.

“너무 우리 것이 없어요. 잘 보존된 전통문화를 이 시대의 언어로 재창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김수철이 요즘 가장 몰두하는 것은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작품. 세계에 없는 편성. 지휘와 전기기타 연주를 병행할 작정이다. 발표할 여건만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일찌감치 반골이었다. 최근 EBS ‘싱어즈-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에 출연해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고 함석헌 선생(1901∼1989)을 향한 곡이라 밝혀 화제가 됐다.

“‘한 송이 꽃이 될까’(‘내일’)는 원래 ‘차라리 돌이 될까’였어요. 가사의 90%가 사전 심의로 바뀌던 시절. 늘 흑백에 머리가 잘려 나간 사진으로 점철한 앨범 표지에도 저의 성향이 반영됐죠.”

그는 TV 음악의 달인이다. ‘사랑이 뭐길래’ 등 드라마 음악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하는 KBS 채널 시그널을 비롯해 여러 방송사의 수많은 뉴스 음악을 만들었다. 이쪽 이력은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몇 초짜리 뉴스 시그널이 20분짜리 대곡보다 만드는 데 더 오래 걸립니다. 객관성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니까요. 그만큼 명예로운 작업이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한국무용협회가 40주년을 맞아 한국 무용 음악 대표작으로 그의 ‘불림소리’를 뽑았다. 음악에 미쳐 달려온 인생, 혹여 후회나 미련은 없을까.

“좋아하는 것에는 후회가 없어요. 현실과 상관없어요. 오늘 열심히 한다, 이 얘기밖에 드릴 것이 없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수철#한국대중음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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