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자의 첫 투병기로부터 얻은 교훈[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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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고통과 고독 이기는 힘은 주변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소통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한 명의 완치자의 경험담이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자세하게 적어 보냅니다.”

부산에서 47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박현 부산대 기계공학부 겸임교수(48)는 9일 동아일보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의 감염 사실을 실명과 함께 공개한 박 교수는 자신이 겪은 증상과 완치 과정을 자세히 적은 A4용지 8장 분량의 PDF 문서 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했다. 그는 “저의 글이 의료진에게 감사를 나누고, 환자에게 용기를 주고, 사회적 불안감과 혼란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기사를 통해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라몬유대 마케팅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달 24, 26일 부산대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지난달 초 미국을 거쳐 고향 부산을 찾았다. 강의 사흘 전인 같은 달 21일 부산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고, 강의가 취소됐다. 취소 당일 그는 부산대 실습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고, 대학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이틀 뒤인 23일부터 발열 증상이 나타났고, 그 다음 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5일부터 9일 동안 음압병동에 입원했던 그는 퇴원 뒤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초기 증상에 대해 “가슴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고, 호흡곤란도 왔다 갔다 했다”고 적었다. 이어 “처음에는 가슴을 철판이 누르는 듯한 통증에서 기왓장이 누르는 통증으로 차츰 변했고, 가슴을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서 손으로 움켜쥐는 듯한 통증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오늘 가장 아픈 정도가 어제 가장 아팠을 때보다 더 좋으면 되는 것이고, 최고점이 차츰 낮아지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니 편하게 마음먹고 있으라”는 의료진의 조언으로 이 고통을 극복했다고 했다.

입원 당시 그는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올렸다. 주 5일 헬스클럽에 다니던 그는 감염 초기에는 당혹스러워했다. “(수술 후 회복 중이던) 어머니 걱정 말고, 너만 걱정하라”는 누나의 조언에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며 자책하는 듯한 구절도 나온다.

하지만 입원 닷새째부터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그는 심장 박동 소리와 측정기의 그래프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여기게 된다. 페이스북 댓글에 달린 지인들의 반응에 그는 “메시지와 응원에 감사하고, 이런 것들이 내가 정신을 차리는 데 진짜 도움이 되고 있다”며 위안을 삼는다. 그 다음 날에는 “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초대 없이 불쑥 찾아온 바이러스를 몸 밖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퇴원 전날 박 교수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병원 이송을 기다리면서 혼자 방에서 불안한 순간을 저도 겪었습니다.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 불안해하면서 살기 위해 정신을 안 놓기 위해 발버둥치던 순간을 저도 겪었습니다. 힘내세요, 가족과 친구가 함께합니다. 저도 당신과 함께합니다. 우리 같이 이겨냅시다.”

17일 0시 현재 국내의 코로나19 완치자는 1400명을 넘었지만 실명을 밝히며 증상과 완치 과정을 공개한 것은 박 교수가 유일하다. 해외에서도 차별과 오명을 피하기 위해 공개를 꺼린다고 한다. 박 교수의 투병기는 최근 홍콩과 미국 언론에도 보도돼 반향을 일으켰다.

박 교수의 투병기와 페이스북 글을 자세히 보면 환자들에게 혼자만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외부 메시지를 통해 끊임없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박 교수는 스스로 그 해법을 찾았지만 그러지 못한 환자들이 병실 밖 가족이나 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코로나19#투병기#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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