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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만 쉴게요」 구어체 제목이 내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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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만 쉴게요」 구어체 제목이 내게 말을 걸었다

박선희 기자 입력 2020-03-17 03:00수정 2020-03-17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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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대화형 책제목’ 열풍
「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고 있네」(왼쪽 사진)와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책 제목으로 현재의 기분과 상태를 표현하는 젊은 독자들. 인스타그램 nim_gnos, limjiyeon87 캡처
회사원 A 씨(32)는 주말에 서점 매대에 놓인 책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제목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였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5년 차. 상사들 눈치 보며 아등바등 쫓기듯 사는 데 지친 터였다. 그는 책을 산 뒤 커피숍 테이블 위에 제목이 잘 보이도록 올려놓고 인스타그램 사진을 올렸다. ‘#제목으로힐링 #취향저격 #직장인의주말’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서점가에 독자들의 취향과 기분을 대변해주는 제목이 인기다. 마치 책이 ‘지금 이런 기분이지?’ ‘딱 이런 게 필요하지 않았어?’라고 말을 걸어오는 식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제목에 열광하는 독자가 늘면서 책 제목은 과감한 구어체로 변모 중이다.

○ 제목으로 ‘나’를 표현하는 독자들


‘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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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에 지친 누군가의 투덜거림 같지만, 실은 요즘 나온 세 권의 책 제목을 연결한 것이다. 제목은 내용을 압축한 핵심어나 독자를 매혹시키는 미문(美文)이 아닌가 했던 이들에게 요즘 책 제목은 너무 구어적이어서 파격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책에서 배움보다는 공감을 원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서선행 가나출판사 차장은 “요즘 독자들은 멘토의 ‘한 말씀’엔 큰 관심이 없는 반면에 공감과 위안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독서 인증’을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이들에게 책 제목은 자기표현의 도구다.

“만약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면 ‘이젠 당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하는 셈이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올린다는 건 ‘늘 최선을 다했지만 더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제목이 나를 대변할 수 있겠다 싶으면 사서 보는 거죠.”(서 차장)

실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두 책의 제목으로 올라온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각각 2만 건에 달한다. 이 제목에 감정을 이입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 제목으로 ‘나’를 알리는 작가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왼쪽 사진)와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 SNS 인증샷에서 해시태그와 함께 걸리기 좋은 책 제목이 인기다. 인스타그램 just_s.y_, spring3121 캡처
작가도 달라졌다. 에세이 시장이 커지면서 SNS에서 새 작가들이 대거 발굴되고 있다. 제목은 SNS 출신 신인을 알리는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다.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제목 장사’가 더 중요해진 데 영향을 미쳤다. 자그마치북스의 구소연 편집자는 “평소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이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선 ‘당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여기 있다’고 직관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어체 제목이 많아지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서술형) ‘그냥 다니는 거지 뭐’(자조형)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생략형)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감탄형) 식이다.

에세이 분야는 구어체 제목이 점령했다. 16일 현재 예스24 에세이 베스트셀러에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2위),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8위),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9위) 등이 올라와 있다. 김태희 예스24 에세이 MD는 “제목 자체가 책의 킬러 콘텐츠가 되면서 공감을 자아내는 대화형 제목의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라고 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고 있네#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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