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개인적인 재난[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17〉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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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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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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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여름 무렵이었다. 그 무렵 살던 동네에 집중호우로 낙동강이 범람하면서 홍수가 났다. 저지대 주택 단지는 어른 무릎 높이까지 물에 잠겼다. 그 단지에 세 들어 살던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른들은 쓰레받기와 양동이로 물을 퍼내고 그나마 멀쩡한 살림살이를 구해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반면 아이들은 물이 가득 차오른 골목에서 스티로폼 뗏목이나 고무 대야를 타고 놀았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그 아이들 중 하나였던 나는 어른들의 표정은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동네에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인근 고등학교 강당에서 지냈던 건 또렷이 기억한다. 낯선 환경이 두려울 새도 없었다. 캠핑이라도 온 것처럼 내내 들떴다. TV 광고에서나 보던 컵라면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급기야 1년에 한 번씩 홍수가 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콘크리트 제방을 두껍게 쌓고 하수도를 손보는 바람에 더 이상의 홍수는 없었다. 여덟 살 여름 무렵의 재난은 그렇게 한 번뿐인 추억으로 남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우리 집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프리랜서 엄마 아빠와 온종일 집에서 자가 격리 상태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게임은 실컷 한다. 게임이 질리면 이따금 책도 읽는다. 그러다 좀이 쑤시면 학교 운동장에 다녀온다. 학교 운동장에는 자기처럼 좀이 쑤셔 몸살이 날 지경인 친구가 서너 명씩 꼭 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약국 앞의 줄이 어제보다 길었다며 마치 신나는 구경거리라도 본 것처럼 말한다. 말하자면 아이는 어른들이 얼마나 심각한 줄 모른다. 아이는 학교 운동장 말고는 딱히 갈 곳도 없고 생각보다 심심할 뿐이다. 오죽했으면 방학 이후 한 번도 열어보지 않던 가방에서 단소까지 꺼내 불었을까. 그때까지 아내와 나는 아이가 교내 단소 동아리 부원인 줄도 몰랐다.

훗날 아이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을 철없던 나처럼 추억 삼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내가 살던 동네에 더 이상의 홍수가 없었던 것처럼 팬데믹이 반복되지 않아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 방역 체계를 아무리 갖춰도 새로운 바이러스의 유행은 막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던 동네에도 재난은 다른 형태로 반복됐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홍수가 아니더라도 집세를 제때 마련하지 못해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게 바로 우리 집이었고, 그때는 어린 나까지 재난을 실감했다. 어디로 이사 가야 할지 막막해하던 부모님의 표정이 그제야 보였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살길이 막막하다. 최소한의 자존감 따위 챙길 겨를이 없다.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하루하루가 재난인 셈이다. 하지만 그 재난은 너무 개인적이라서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남의 일이다.
 
권용득 만화가
#코로나19#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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