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재택근무[2030 세상/정성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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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생애 첫 재택근무를 하게 된 회사원 A는 ‘개꿀∼’을 외치며 잠옷 차림으로 책상에 앉았으나, 오후 9시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왜 아직도 일이 안 끝나는 거야.’ 7시면 ‘칼퇴’하는 회사생활에 비해, 하루 할당량을 채워야 메신저에서 로그아웃할 수 있는 재택근무는 높은 생산성을 요했다. 하지만 집이란 누워서 자는 곳 아닌가? 그곳에서 일이라니. 그래도 상사 없는 일터는 짜릿하다. 3년 차 재택근무 프리랜서로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 몇 가지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상 습관이다. 일어나자마자 노트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써 보자. 내 경우는 석 달째 꿈 일기를 쓰고 있다. 이 무슨 사이비 종교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덕분에 아침에 벌떡 일어나게 된다. 꿈은 3분이 지나면 까먹는다. 꿈 일기를 매일 쓰려면 노트를 머리맡에 두고, 눈 뜨자마자 몸을 일으켜 써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흐릿하던 정신이 맑아진다.

더불어 적나라한 무의식과 마주하게 된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꿈에 나타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기도 하고, 당당한 척했던 순간들의 이면을 마주하기도 한다. 며칠 전엔 스무 살 때나 느꼈을 법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애매한 커리어에 대한 불안과, 결혼에 대한 압박, 재미없어지는 인생에 대한 걱정. 하지만 운동 갔다가, 일하고 오니 사라져 있었다. 혼자 조용히 견딘다는 것. 가끔은 타인의 위로보다 스스로 인정하는 게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둘째는 ‘습관 리스트’ 쓰기다. 프리랜서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간 약속. 하지만 미루는 습관을 없애긴 쉽지 않다. 이 지긋지긋한 습관 좀 없애보려고 자기계발서를 여럿 읽었는데, ‘마우스 더블클릭’과 ‘드래그 앤드 드롭’ 기능을 개발한 ‘오늘, 또 일을 미루고 말았다’의 저자는 20 대 80 로켓시간법을 제시했다. 막판 스퍼트 낼 생각 하지 말고 일을 받자마자 시작할 것! 전체 기한의 20%를 사용해 총업무량의 80%를 처리하는 게 규칙이다. 이를 테면 열흘 동안 해야 하는 일이 주어졌다면, 이틀 동안 전체 일의 80%를 끝내고, 뒤에 나머지 20%의 일을 천천히 수정, 보완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마감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초반 20% 내에 총업무량의 60%를 끝내지 못할 경우, 어차피 기한 안에 못 끝낼 확률이 크니, 기간 연장을 요청해서 신뢰라도 잃지 말라는 교훈까지 준다. 너무 훌륭한데 어렵다.

그 대신 ‘미루는 습관을 이기는 작은 책’에서는 이보다 쉬운, ‘습관 리스트’ 쓰기를 제시한다. A4 용지에 표를 만든다. 가로줄 맨 상단에 만들고 싶은 습관을 쭉 적는다. 바로 밑엔 각 습관의 최소 목표를 적는다. 왼쪽 세로줄엔 각 목표를 실천해나갈 한 달 분량의 날짜를 아래로 쭉 적는다.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둔 뒤 매일 손으로 체크해 나가면 끝!

벌써 3개월째 하고 있다. 어떤 습관은 내 것이 될동말동하지만, 어떤 습관은 갈 길이 멀다. ‘하루 세 페이지 영어 공부’는 45일 동안 ‘×(엑스)’ 표시고, ‘지각 안 하기’는 ‘택시 타서 아슬아슬하게 3분 지각’ 등으로 점철됐다. 발전 좀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흔적들이 애잔하면서도, 가끔씩 동그라미 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어쩌면 좋은 습관이 전부가 아닐까? 촘촘히 준비하면 설렘이 두려움을 압도하리라 믿는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재택근무#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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