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진단검사 ‘공포’의 25시간[광화문에서/김현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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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김현수 산업1부 차장
햇볕은 따뜻했지만 찬 바람은 여전했다. 이곳은 서울 양천구 선별진료소 천막 대기실. 책을 들고 있었지만 한 시간째 계속 같은 페이지에 머물렀다. 그때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오라며 내 이름을 불렀다.

“기침 증상이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없죠?”

바쁜 의료진에게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기침이 안 나면 아닐 것’이라는 답을 듣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의사는 “어떤 분은 설사가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검사는 간단했다. 긴 면봉으로 코와 입안을 훑는 정도였다. 그 후 ‘음성’ 문자가 오기까지 걸렸던 25시간 8분은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이었다.

사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넘길 정도의 감기였다. 1339에 전화해 보니 해외 방문 이력 등이 없고, 발열도 없다면 일반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감기 기운은 오래갔고 때때로 미열도 났다. 다시 1339에 물으니 약을 먹어도 미열이 났다면 선별진료소로 가보라고 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하얘졌다. 주변에 피해를 끼쳤다는 죄책감도 견디기 어렵지만 ‘확진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 무서웠다. 증상이 나타난 이후 조심했지만 무증상 감염도 있으니 안심할 수 없지 않은가. 나 때문에 신문이 나오질 못한다면? 당장 회사 선후배들, 그들 가족의 건강은 어떡하지. 동네 각종 커뮤니티에선 ‘양천구 ○○번 환자’로 신상이 공개될 텐데…. 욕 댓글이 달리진 않을까. 내 종교마저 의심받겠지. 최악의 시나리오가 툭툭 튀어나오다 무증상일 때 만났던 임산부 지인에 이르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나 자신도 “증상이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이 다녀?”라든가 “혹시 신천지 아니야?”라고 확진자들에 대해 쉽게 말했던 게 생각났다. 실상 그들은 감염 피해자들인데 말이다. 한 자동차 회사에서 확진자가 나와 공장이 멈췄고, 그가 신천지 교인이란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과 달랐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이 낱낱이 공개되고, 여론의 오해와 비판을 받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사실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화된 이상 누구나 확진자가 될 수 있다. 확진자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낙인은 오히려 잠재적 환자를 숨게 만든다. 또 어떤 이에겐 ‘사회적 거리 두기’조차 사치일 수 있다. 삼성 등 대기업은 “확진자도 피해자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고 쉬라”며 확진자 및 자가 격리자에게 따로 격려 물품을 보내기도 한다. 반면 요즘 같은 불경기에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영세기업 비정규직 직원, 하루 벌이가 소중한 이들은 목이 칼칼하고 피로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자가 격리를 자청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자가 격리도 정규직 비정규직 나뉜다”는 말이 나올까. 모두 최선을 다해 개인 방역에 힘써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정을 모른 채 과도하게 확진자를 비난하는 건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온갖 번뇌가 오갔던 공포의 25시간 동안 지인들의 “괜찮다”는 격려가 생각보다 큰 힘이 됐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코로나19#진단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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