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연일 텅빈 객석… 연극-무용-독립영화 집단실업 위기[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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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직격탄 맞은 예술계

“2월에 취소된 공연 회차만 409회, 극단 400개 이상이 피해를 봤습니다. 현재까지 추산한 피해액만 45억 원입니다. 3월이 지나면 더 늘어나겠죠.”(김관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

“무대에 출연진만 여섯 팀이 올라오는데 관객은 10명도 안됐어요. 바이러스 걱정하며 무대에 서느니 관객이 아예 없는 게 속 편할 지경입니다.”(이철진 무용수)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던 연극, 무용 등 기초예술계와 독립영화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무용수, 제작진은 ‘집단 실업’에 처했다. 소극장을 운영하는 극단들은 대관료를 지불하기조차 버겁다. 독립영화계는 개봉 날짜를 미루고 싶어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개봉하고 있다.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이번 사태를 피해 올 하반기로 상영 일정을 변경하면서 몇 달 뒤에는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와 관련 단체들이 긴급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예산 편성과 심사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예술인들이 혜택을 받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초예술계는 과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보다 더 큰 규모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긴급지원책 정비와 예술계 계약 관행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공연 매출, 추락 또 추락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연극의 해’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미투 등으로 홍역을 치른 연극계를 살리기 위해 21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당장 살아남는 것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이에 현장에서는 ‘연극 생존의 해’가 됐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오태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은 “지금 같은 위기에서 연극의 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배우, 스태프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에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일 공연예술 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5주 사이 공연 예매건수와 매출액은 곤두박질쳤다. 2월 2주 차 공연 전체 예매건수는 13만6831건에서 3월 2주 차에는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4만4183건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연극은 3만6847건에서 1만5844건으로, 무용도 5503건에서 345건으로 크게 줄었다. 무용 공연은 3월 2주간 딱 두 편만이 무대에 올랐다.

매출액은 더 큰 폭으로 줄었다. 연극은 5억6000만 원 수준에서 1억5000만 원대로, 무용은 3억4000만 원대에서 1200만 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집계에서 누락된 일부 취소 표와 소극장 공연 상황을 감안하면 하락폭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배우, 제작진은 당장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극배우는 “3, 4월 잡혀있던 차기작 연습과 공연이 모두 무기한 연기됐고 5, 6월 공연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당장 소일거리, 아르바이트를 찾아나서는 배우도 많다. 지춘성 서울연극협회장은 “연극계는 평소에도 워낙 힘들지만 이번엔 생존 자체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남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제작감독, 무용수 다수가 프리랜서여서 경제적 타격에 상당히 민감하다. 공연 회차를 줄이더라도 공연을 올리는 방법을 강구 중이다”고 했다.

소극장 운영자들도 수익을 포기한 지 오래다. 당장 대관료조차 감당하기 힘들어 긴급지원이나 대출을 알아보는 이가 많다. 최윤우 한국소극장협회 사무국장은 “다수 소극장 공실률이 100%에 육박하는 수준이라 월세를 마련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연 기획, 제작, 연습까지 평균 두 달 정도를 잡는 것을 고려하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실제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까지 최소 석 달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 사무국장은 “여름인 6, 7월까지 6개월 넘게 수익이 없는 소극장도 속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복 없는’ 독립영화계

독립영화들은 하루 극장 관객 수가 4만∼5만 명으로 떨어진 최악의 상황에서도 개봉을 강행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등 3관왕에 오른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예정대로 이달 5일 개봉했다. ‘찬실이는…’의 배급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는 “개봉을 코앞에 두고 며칠 동안 개봉 일정을 끝까지 고민했다. 개봉을 미룬 50여 편의 상업 영화들이 하반기 한꺼번에 극장에 몰리면 독립영화는 상영관을 구하기 더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뜩이나 영화관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신작 개봉까지 크게 줄어든 것도 악순환을 심화시키고 있다.

영화관들의 휴관으로 인한 어려움도 크다. 평소에도 상영관을 확보하기 어려운데 휴관으로 인해 상영관을 잡기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감염자가 집중된 대구경북 지역의 독립영화관 중 임시휴관을 결정한 곳이 많다. 대구 중구의 독립영화 전용관 ‘오오극장’은 지난달 20일부터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고, 동성아트홀 역시 지난달 24일부터 3주간 휴관한 뒤 이달 12일부터 문을 열었다. 전북 유일 예술영화 전용관인 전주 디지털 독립영화관도 이달 9일부터 잠정 휴관했다.

독립영화 ‘기억의 전쟁’은 당초 35개 상영관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었지만 결국 절반 수준인 17개관에서 개봉했다. 배급사 시네마달 관계자는 “이길보라 감독이 현재 상황을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다. 개봉을 미루고 싶어도 마케팅 비용 지출이 끝난 상태라 어쩔 수 없다. 차라리 4, 5월까지 영화를 계속 상영하는 장기전도 생각 중이다”고 했다.

제작 중이거나 제작을 앞둔 영화 촬영 일정이 연기되면서 일자리도 대폭 줄었다. 영화업계 관계자는 “프리프로덕션(사전제작) 일정이 연기되면서 스태프 일자리가 지난해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광고촬영 같은 부업마저 뚝 끊겼다”고 했다. 송창근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지역 일정, 행사도 모두 취소되면서 조연, 단역급 연기자는 일거리가 없어 대리운전, 퀵 서비스를 알아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 공연계 시스템 정비 목소리도

“매일 지원금 문의 전화만 50통씩 옵니다.”

코로나19 관련 공연예술분야 지원 정책을 안내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코로나19 전담창구’에는 요즘 매일 수십 통씩 전화가 걸려온다. 문체부를 비롯해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이 약 15개의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급한 불이라도 꺼보려는 예술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문체부는 긴급 생활안정자금 융자, 창작준비금 지원, 예술단체 대관료 지원, 소규모 공연장 방역물품 지원을 내놓았다. 서울문화재단은 ‘2020 서울예술지원’ 사업의 심의 일정과 지원금 교부를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 관계자는 “피해보전, 대관료 지원을 긴급한 사안으로 판단했다. 총 피해액은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어려운 단계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 시행한 ‘1+1티켓’(티켓 한 장을 사면 정부 지원으로 두 장을 주는 정책) 등 사태가 진정된 후 공연계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스스로 예술 활동과 피해 내용을 증빙해야 하는 절차부터 심사까지 막막함을 호소하는 예술인이 많다. 신청이 폭주하면서 접수 절차만 4주가량이 걸린다. 한 극단 예술감독은 “융자 지원의 경우 신용도 심사와 서류절차까지 다 끝나야 하기 때문에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계약서를 뒤늦게 작성하거나 구두계약만 체결하는 공연계의 고질적 관행도 지원을 어렵게 만든다. 황승경 연극평론가는 “주·조연 배우는 물론이고 음악, 무대감독급 제작진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공연 후에 작성하는 일도 많아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작진, 배우 등 예술인에게만 집중된 지원 대상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학로 ‘성균소극장’ 관계자는 “소극장들은 벌벌 떨면서 공연을 강행하거나 무기한 휴업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공연이 취소되면 피해를 보는 건 마찬가지인데 지원책은 예술인들에게 편중돼 아쉽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객 없이 공연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주로 국공립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티켓 수익은 내지 못하더라도 예술인이 무대에 설 수 있고 관객들은 무료로 공연을 볼 수 있다. 자체 기획공연을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한 경기아트센터는 “최근 연극 ‘브라보, 엄사장’ 생중계는 실시간 접속자를 비롯해 조회수가 7000회를 넘었다”고 밝혔다. 네이버를 통해 공연 생중계를 진행한 최정호 아르코예술기록원 과장은 “이번 사태로 공연 생중계, 영상 아카이브 작업이 보다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기윤 pep@donga.com·김재희 기자
#코로나19#연극#무용#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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