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했다”…미인가 대안교육시설의 성폭력·인권침해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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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3월 14일 0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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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유명 대안교육 시설에서 지난 2013년부터 2014년 사이에 교사가 학생에게 보낸 SNS 메시지 내용 일부 발췌.© 뉴스1
부산의 한 유명 대안교육 시설에서 지난 2013년부터 2014년 사이에 교사가 학생에게 보낸 SNS 메시지 내용 일부 발췌.© 뉴스1
부산의 한 유명 대안교육 시설에서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은폐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성적 괴롭힘과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미투’운동이 제기됐으나 교육당국과 지자체는 법적 미비를 이유로 사실상 외면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대안교육 시설은 부산교육청에서 관할하는 대안학교 설립위원회 심사를 거치거나 정식 인가를 받지 않은 무등록 시설이다. 자체적으로는 ‘대안학교’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초중등교육법이나 지방교육자치법 테두리 밖에 놓여있는 셈이다.

시교육청은 이 시설의 경우 허가받은 ‘대안학교’도 아니고 현행법에 근거한 ‘학생’과 ‘교사’도 없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 실태 조사나 징계, 관리 감독을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미인가 대안교육 시설에 대한 전수조사와 성폭력 피해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교육청이나 지자체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학교 밖 청소년 지원법을 관할하는 여성가족부와 부산시가 관리주체에 해당하지만 직접적인 간섭이나 규제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자는 살면서 다 당한다” “이기적이다” 성학대 발언 잇따라

13일 부산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부산의 A대안교육 시설 졸업생 10여명은 치유연대를 구성하고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3차례에 걸쳐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는 그동안 성폭력 문제를 은폐하거나 피해자에게 2차 가해한 대안교육 시설을 규탄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지난 2017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뒤 지속적으로 성폭력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지만 아직까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대책 마련를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해당 교육시설은 지난 2010년 처음 입학생을 받았고 이듬해인 2011년 비영리민간단체로 부산시에 등록했다. 주로 세계 여행을 다니고 공연을 하면서 삶에 대한 소통과 공감을 중시한다는 교육 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들은 여행하는 기간동안 남녀 구분없이 길거리에서 침낭을 깔고 노숙하거나 캠핑장과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학생간에 강제추행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2014년 유럽여행 도중에 학생간에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면서 여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한 교사는 오히려 피해 학생을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라면서 ‘꼴보기 싫다’는 등 2차 가해를 했다는 증언도 있다.

또다른 교사는 관련 사건이 벌어지자 “여자는 살면서 다 당한다”라는 막말을 내뱉기도 했다.

A대안교육 시설 졸업생들은 교사들이 학생을 무릎 위에 앉히거나 뒤에서 안는가 하면 손을 잡고 걷는 등 교육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이 다반사였다고 말한다.

한 졸업생은 “희안하게 스킨십이 자유로운 분위기였는데 주로 남자 선생님들이 학생을 무릎에 앉히거나 안거나 손잡고 다니거나 그런게 당연했다”며 “여자 선생님과는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교사는 늦은 밤에 학생을 밖으로 불러내 드라이브를 하고 마치 연인인 것처럼 메시지를 보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 해당 교사는 SNS 메시지를 통해 ‘다른 남자 앞에서 쉽게 울지마’ ‘남자들 반할라’ ‘우린 언제 둘이 데이또(데이트) 할라나(하려나)?’ 등의 내용을 학생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장은 고3과정 수업 도중에 ‘여학생 3명이 뽀뽀를 해주면 수업을 일찍 마쳐주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학생들에게 강제로 뽀뽀하게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다른 졸업생은 “학교 선생님 볼에 뽀뽀를 한다는 게 너무 이상하고 꺼림직해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이 얼른 하라고 말했다”며 “다른 여학생 2명도 하길래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볼에 뽀뽀를 했었다. 정말 기분이 별로였다”고 진술했다.

졸업생들은 무엇보다 해당 대안교육 시설에서 올바른 성교육을 받지 못했고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성관념을 구축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치유연대는 미인가 대안교육 시설에서 벌어진 ‘미투’ 사례를 모아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할 방침이다.

◇불거진 성폭력 문제에도 교육청·부산시 “법적 권한 없다”

해당 시설은 시교육청에 인가받지 않은 무등록 교육시설이기 때문에 초중등교육법과 지방교육자치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시교육청은 물론 시도 관리감독을 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권침해나 성폭력 피해 사례를 파악하기 위한 전수 조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미인가 대안교육시설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한 학생이 아닌 학교밖 청소년으로 분류되고 교사도 교육공무원임용령에 따른 국가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현행법상 징계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미인가 대안교육 시설은 ‘선생님’을 고용하기 전에 성범죄경력을 조회하지 않거나 성폭력 사건을 인지한 즉시 수사기관에 의뢰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 지침이나 관련 법에 따라 교육과 학예에 대한 업무를 이행할 수 있는데 해당 대안교육시설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한이 없어 어렵다”고 말했다.

이같은 미인가 대안교육 시설은 부산지역에 10여개가 있고 3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시교육청이나 시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간섭이나 규제는 할 수 없고 관계 부서와 협력해서 성폭력 사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교육을 권고하려 한다”며 “현장 방문이나 실태조사 등은 교육청 관련 부서와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미인가 대안교육 시설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교육청에서도 보호조치를 취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치유연대는 지난 9일 재차 성명서를 내고 “법의 보호가 더욱 이뤄지기 힘든 제도권 밖 청소년들의 안전을 보장받고 권리를 찾고 싶다”며 “다시는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가해자를 처벌하고 대안교육 내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해당 대안교육 시설에서 교장을 맡고 있는 A씨는 “학생 간에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조치가 미흡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사과했다”며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했고 피해 학생을 상담소로 연계도 했기 때문에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교육과정상 몸으로 하는 활동이 많고 미투운동이 나온 이후 사회 패러다임이 바뀐 건데 과거에 즐겁게 활동한 것을 성추행이라 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교사 B씨는 “늦은 밤에 학생을 불러내 만난 적이 없다”면서 관련 문제 제기를 부인했다.

(부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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