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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단일화-북풍에, 눈앞의 ‘1당 꿈’ 수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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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단일화-북풍에, 눈앞의 ‘1당 꿈’ 수포로

윤다빈 기자 입력 2020-03-14 03:00수정 2020-03-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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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한 달 앞… 역대 사례로 본 막판 변수들
“진짜 선거는 이제부터 시작이지.”

20년 넘게 여의도 정치권에서 선거를 관찰해온 한 중진 의원은 “역대 사례를 보면 선거가 다가오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부동층의 표심이 흔들리면서 판세가 요동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나 올해 4·15총선은 예상치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의 여파와 비례대표 전담 위성정당 탄생 등으로 선거의 판세를 더욱 예상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다가오는 16일로 4·15 총선이 30일 남은 가운데 역대 선거를 좌우했던 막판 주요 변수를 살펴봤다.


○정동영 김용민 윤상현… 총선 망친 ‘실언’ ‘막말’

주요기사

선거 막판 부동층의 표심을 좌우할 주요 변수 중 하나는 말이다. 누가 실언과 막말을 하느냐가 살얼음 같은 표 대결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곤 한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키면서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 당시 탄핵안 가결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200석 달성’이 거론될 정도로 압도적 승리가 예상됐다.

그러나 선거를 불과 2주가량 앞두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이 터졌다. 당시 정 의장은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60,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가 중년과 노년층의 반발을 불러왔다. 정 의장의 막말로 열린우리당의 압도적인 우세였던 총선 판세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정 의장은 자신의 비례대표직을 포기하고 단식에 들어갔지만 열린우리당은 전체 299석 중 152석을 차지해 아슬아슬하게 과반 의석을 달성하는 데 그쳤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끈 한나라당은 처음에는 개헌 저지선(100석)을 달라고 읍소하다가 121석을 차지하며 선전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3주가량 남긴 시점에서는 당시 팟캐스트 라디오 ‘나는 꼼수다(나꼼수)’ 진행자 출신의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가 팟캐스트에서 여성, 노인, 기독교 비하 막말을 쏟아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 후보는 “(성폭행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풀어 라이스(전 미 국무장관)는 아예 강×을 해 죽이는 거예요” “한국 교회는 범죄 집단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김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당 안팎의 목소리가 날로 커졌지만 ‘나꼼수’ 팬덤을 의식한 민주당 지도부는 그의 공천을 거두지 않았다. 정권 말 이명박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등 당시 정부 여당에 대한 따가운 민심 속에 과반 의석을 바라보던 민주당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127석에 그쳤다. 새누리당은 예상 밖의 과반 의석(152석)을 얻어 19대 총선에서 승리했고 이 기세로 그해 대선에서도 이겼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지도부가 나꼼수 눈치를 보다가 후보를 정리하지 못한 게 가장 큰 패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막말의 주체가 새누리당으로 바뀌었다. 당시 친박(친박근혜) 핵심이었던 윤상현 의원은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벌어진 당청의 공천 신경전 과정에서 청와대에 호락호락하지 않던 김무성 당시 대표를 원색 비난했다. 김 대표 역시 전북 전주 지원 유세를 하다 “전북은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돌아온 게 무엇이 있느냐. (전북 사람들은) 배알도 없느냐”고 말해 논란이 됐다. 절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자신하던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선거를 앞두고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결국 2016년 4월 총선 결과는 122석을 얻은 새누리당이 123석을 얻은 민주당에 1석 차이로 패배했고, 원내 1당의 지위는 야당에 넘어갔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선거연대와 후보 단일화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야권연대를 선언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뒷줄 왼쪽)와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뒷줄 오른쪽)가 야권 단일 후보인 심상정 후보(뒷줄 가운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안철수 대표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동아일보DB
최근 선거에서 같은 진영 내 후보 단일화는 ‘선거의 필승 공식’처럼 여겨졌다. 역으로 분열은 곧 패배할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실제 주요 선거에선 ‘합종연횡’에 성공한 진영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79석을 얻는 데 그치자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전 총재와 연대했다. 김 후보는 ‘공동 정부’와 ‘총리직 제안’으로 DJP연합을 성사시켰다. DJP연합은 호남-충청 지역 연대로 세(勢) 규합에 성공한 결과물로 평가된다. 여기에 무소속 의원이었던 박태준 의원도 연대에 합류하면서 결국 ‘DJ 대선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보수 세력 일부를 통합시킨 김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39만 표 차이로 따돌리고 첫 수평적 여야 간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후광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 단일화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당시 노 후보는 정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에서 승리한 뒤 그 기세를 이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의 양자 대결 지지율 차이를 크게 좁혔다. 이후 노, 정 후보는 합동 유세를 벌이면서 단일화 효과를 이어갔다. 대선 하루 전날인 12월 18일 오후 10시경 정 후보가 노 후보 지지를 철회했지만 이는 진보진영 지지층 결집이라는 후폭풍을 불러왔고, 노 후보는 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2011년과 2012년에도 ‘야권연대’가 큰 변수로 작동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가 반드시 승리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지지율 50%에 육박한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5%대 후보였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조건 없이 후보직을 양보하면서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고,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경선에서 승리를 거둬 완벽한 야권 단일화를 이뤘다. 박원순 후보는 본선에서 손쉽게 당선됐다.

반면 2012년 12월 대선은 야권의 후보 단일화 전략이 실패로 귀결됐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대선을 26일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후보직 자진 사퇴로 사실상 진보 진영의 대표 후보가 됐다. 이어 통합진보당 이정희,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까지 대선 후보직을 내려놓으면서 문 후보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의 일대일 구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안 후보는 문 후보와 제대로 된 합의 없이 갑작스럽게 후보직을 사퇴하는 등 단일화 과정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지지층 결합의 효과 역시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이 정면 승부를 벌인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51.6%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2년 4월 19대 총선 역시 야권은 역대 총선에서 가장 강력한 단일화를 이뤄냈지만 그 결과는 패배였다. 당시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통합진보당’으로 합치면서 진보세력의 통합이 이뤄졌고, 민주통합당이 이들과 또다시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당시 새누리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었지만 선거는 새누리당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과거 선거 영향 컸던 북풍… 최근엔 영향력 줄어

1990년대까지 북한발 ‘북풍(北風)’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에서 사흘 연속 무장시위를 벌였다. 승부처였던 수도권에서 우세를 보이던 야당 새정치국민회의는 북한군의 무장시위 이후 기세가 꺾였다. 결국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이 139석을 얻어 79석을 얻은 새정치국민회의와 50석을 얻은 자유민주연합을 누르고 총선 승리를 거두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선거에서 북한 변수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기 시작했다. 16대 총선을 사흘 앞둔 2000년 4월 10일, 김대중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발표했지만 ‘신(新)북풍’이라는 민심의 반발을 불러왔고, 보수층과 영남 표 결집을 야기했다. 결국 선거에서 당시 1당을 기대했던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을 얻어 133석을 얻은 한나라당에 패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북한이 핵동결 해제를 선언하면서 2차 북핵위기가 터졌지만 선거를 앞두고 큰 변수가 되지 않았다. 이후 2007년 대선을 두 달여 앞둔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육로로 방문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그러나 당시 정권 교체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고,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48.7%를 득표해 26.1%를 얻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압도했다.

2010년 3월에는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두고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과의 적대적 국면 속에서 보수 세력의 선거 우세가 점쳐졌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16곳 광역단체장 가운데 6곳에서만 당선자를 내면서 야당에 패배했다.

2012년 12월 14일에는 대선 투표를 5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부산 유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이 사실을 집중 공격했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은 수세적인 입장에서 선거를 치러야 했다. 이에 반해 2018년 6월 지방선거는 1, 2차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및 6·13선거 전날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북-미 정상회담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민주당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4·15총선#총선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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