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그까짓것” 가볍게 봤다가… ‘해결사’ 리더십 흔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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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스트롱맨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주요국 ‘스트롱맨(권위주의 성향의 지도자)’을 뒤흔들고 있다. 장기 집권 피로감, 경제난 등으로 자국 내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초기에는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의 시진핑(習近平·67) 국가주석,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집단 감염 사태를 방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66) 일본 총리가 정보 은폐 및 부실 대처 논란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8),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81),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35) 등도 화살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반면 리셴룽(李顯龍·68) 싱가포르 총리는 솔직하고 겸허한 태도로 다른 스트롱맨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 권위적 통치술로 ‘해결사’ 이미지를 강조해 왔다. 자국 내 환자가 처음 발생했을 때 대부분 ‘코로나19를 곧 제어할 수 있다’는 식의 반응도 보였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이동과 교류가 닫히고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타격이 심각해지면서 흔들리는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 하메네이, 31년 장기 집권 ‘흔들’


눈에 띄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트롱맨은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다. 신정일치 국가에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국가마비 상태에 처하자 국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그는 1989년 집권 후 31년째 이란을 통치하고 있다. 이슬람 혁명을 이끈 전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보다 더 강력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종교를 앞세워 정적(政敵), 여성, 언론, 성소수자를 철저히 탄압했다. 시아파 패권을 확장하기 위해 경제난에도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 등 중동 각지의 시아파와 수니파 분쟁에 개입했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한 사실이 알려진 2002년 후 서방의 제재가 잇따르자 국민들은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의약품 또한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국민들은 과거에는 감히 불만을 표시할 수도 없었던 ‘신의 대리인’에게 원색적인 저주를 퍼붓고 있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감염이 무서워 사람들이 반정부 시위를 조직하지 않을 뿐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현 정권이 무너졌을 수 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코로나19에 걸렸는데 하메네이는 왜 걸리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돈다”고 전했다.

특히 현 정권이 지난달 21일 총선 승리를 위해 초기 대처에 소홀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불만이 더 커지고 있다. 총선 이틀 전 중부의 시아파 성지 ‘쿰’에서 첫 번째 감염자가 확인됐는데도 정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염병 전문가인 영국 옥스퍼드대 카미알 알라이 방문연구원은 “국민 건강 대신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해 사태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향후 사태가 안정되더라도 하메네이가 예전 같은 권력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1년 장기 집권으로 집권 보수세력 안에서조차 세대교체론이 늘어나고 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은 경제난, 미국과의 대립,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등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대형 악재 속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 푸틴·무함마드, 저유가 쇼크 불러 비난 쇄도


2000년부터 20년간 집권 중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왕세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위기에 처한 와중에 유가 하락 전쟁을 시작해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이 가뜩이나 취약한 세계 경제에 큰 폭탄을 떨어뜨렸고 이것이 러시아와 사우디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자충수’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와 사우디는 이달 초 사우디 주도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러시아 주도의 비 (非)중동 산유국 간 회의에서 원유 생산량을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러시아는 세계 경기 둔화로 인한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원유 생산을 줄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산이 미국 셰일 업체에만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회의에서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감산을 거부하자 푸틴 대통령은 즉각 증산을 시작했다. 사우디 역시 ‘맞불 증산’에 나섰다. 이런 유가 하락이 세계 경제의 불안심리를 더 키워 금융 시장과 원자재 시장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원유 증산을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 그의 노골적인 종신집권 야욕 등으로 최근 지지율이 예전보다 낮은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2014년 그의 지지율은 80%대였지만 최근 40%대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을 ‘미국에 맞서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돌파하려 한다는 의미다.

최근 러시아에서도 마스크 대란이 심각하다. 1.5루블(약 25원)에 팔리던 마스크가 지난달 70∼100루블(약 1170∼1670원)로 최대 65배 이상 치솟았다. 정부가 마스크를 비싸게 파는 약국의 약사에게 면허를 박탈하겠다는 초강수까지 뒀지만 물량 부족이 심각하다. 푸틴 정권의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7일 왕위 경쟁자인 사촌형 무함마드 빈 나예프 전 왕세자, 삼촌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 등을 반역죄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코로나19 사태, 원유 가격 전쟁 등으로 안팎으로 리더십이 타격받자 반대파 탄압으로 돌파하려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시진핑·아베 ‘외부의 적’ 비난 일관


시 주석과 아베 총리는 ‘외부의 적’을 공격하면서 위기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전략을 펴고 있다.

12일 시 주석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통화에서 “중국 인민의 힘든 노력이 세계 각국에 전염병 방제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벌어줬다.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미군이 후베이성 우한에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 등 관영언론 역시 ‘독감 환자가 대거 발생한 미국이 코로나19 발원지일 수 있다’는 주장을 연일 설파하고 있다.

이날 미 CNN은 중국의 환자 수가 줄어들면서 지도부가 이를 중국의 ‘강력, 효율성, 신속성’을 선전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람이 집에 머물도록 강요하는 식의 강력한 통제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는 있지만 경제를 망치고 많은 이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며 전형적인 ‘독재자의 처신 방정식’이라고 질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역시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지난해 12월이 아니라 지난해 11월 17일 중국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정부 자료가 있다고 보도했다. 11일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한에서 유래했다. 우한 발병 사태가 은폐되는 바람에 국제사회가 대응에 나서는 데 두 달이 걸렸다”며 중국의 적반하장을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이 두 달간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과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팀이 현장에 있었다면 중국과 전 세계에서 벌어진 일을 급격하게 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보 은폐를 강력히 비난했다.

아베 정권 역시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명분으로 5일 단행한 전격적인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가 국내 정치 위기 및 외교 실패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벚꽃 스캔들, 카지노 스캔들 등 각종 비리,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10월 전후로 예정된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한국’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폐지는 우익이 줄곧 주장해온 정책이고, 일본에서 한국인에 의한 감염 사례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베 정권이 외부의 적을 이용하려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베 총리 본인 역시 “입국 금지는 정치적 판단”이라고 시인했다.

이를 통해 아베 총리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연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도쿄 올림픽이 최대 변수로 꼽힌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 “도쿄 올림픽이 취소되거나 경제 불황이 깊어지면 아베 총리가 내년 9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해야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베 총리와 친밀한 사이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12일 “무관중 경기를 상상할 수 없다”며 1년 연기를 주장했다.

○ 리셴룽은 소통으로 위기 극복


국민에게 피해 사실을 솔직하게 밝히고 차분한 대응을 호소하는 스트롱맨도 있다. 싱가포르 초대 총리인 리콴유(李光耀)의 아들이자 2004년부터 16년째 장기 집권 중인 리셴룽 총리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는 발병 초기인 지난달 1일 중국인과 14일 이내에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중단했다. 중국 관광객이 전체 관광객의 20%를 차지하는데도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 과감하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정부가 7일 보건 경보를 기존의 ‘노랑’에서 ‘주황’으로 한 단계 격상하자 시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됐다.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한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퍼지면서 식료품, 화장지 등을 사재기하는 시민들이 속출했다.

리 총리는 8일 소셜미디어에 8분 분량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다민족, 다인종 국가인 싱가포르의 상황을 반영하듯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등 3개 국어로 제작된 영상에서 “확산을 막는 것이 더는 어렵다”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더 확산되면 정부는 접근 방식을 달리할 것이고, 그 모든 단계를 알릴 것이므로 공황 상태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충분한 생필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통조림, 화장품 등을 비축할 필요가 없다. 이번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단결되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자”고 호소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총리의 호소 이후 사재기 현상이 잦아들었다”고 전했다.

보건부에 따르면 11일까지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78명이다. 지난달 교회 집단 감염이 보고된 이후 꾸준히 확진자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리 총리의 적극적인 소통과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혼란을 줄였다는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이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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