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추경 늘리는 정부…“상황 악화되면 쓸 카드 있나” 우려

  • 뉴시스
  • 입력 2020년 3월 12일 06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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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청, 증액 공식화…공적 마스크 세제 감면 등 포함
"국채 이자율 상당히 낮아…발행 늘려도 소화 가능해"
국가채무 2023년엔 1072조…GDP 대비 비율도 48%로
"한꺼번에 다 쓰지 말고 추가 재정투입 여력 비축해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짠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규모는 다음 주 중 구체화될 전망이다. 비상시국인 만큼 현재 규모에서 3~4배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코로나19 사태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써 버리는 결정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올해 추경안에 대한 국회 심사 첫날이었던 지난 11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여야를 불문하고 이번 추경안의 규모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날 오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도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피해 최소화를 위한 추가경정예산 증액과 지원 사업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는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편성, 지난 5일 국회에 제출했다. 2월 내내 연이어 발표한 정부 대책에 포함된 세제 지원책 등을 합하면 총 지원 규모는 15조8000억원까지 커진다고 기재부는 밝혔다.

같은 날 여당과 정부, 청와대는 추경 증액을 공식화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신용보증기금 지원과 경영안정자금 확대, 군 장병 급식비 증액, 약국에서 판매하는 공적 마스크에 대한 세제 감면 등을 포함해 지원 사업을 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오는 17일을 처리 시한으로 두고 있는 만큼 다음 주 안으로 수정안을 마련해 발표할 것을 목표로 뒀다.

추경 증액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입에서부터 공론화됐다. 지난 9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박 회장은 “전액이 집행된다 해도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효과는 0.2%포인트(p) 정도일 것”이라며 현재의 규모로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라, 모건스탠리 등 일부 기관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을 1%대로 전망한 것을 들며 “성장률을 1%p 높이려면 40조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민간에서도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선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현재 국채 시장에서 이자율이 굉장히 낮은 상황인데, 발행 규모를 더 늘리더라도 급격하게 올라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자영업자나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사업을 위주로 30~40조원까지 상당한 규모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역대 국회 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추경의 총 규모가 증액된 적은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쳤던 2008년에도 4조9000억원 규모의 정부안이 국회에선 4조6000억원으로 깎여 확정됐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가 있었던 2015년에는 11조8000억원에서 11조6000억원으로 감액됐었다.

과거 사례보다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 데다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 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초유의 결정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코로나19가 국가재정법상 명시된 추경 편성 요건 중 ‘대규모 재해’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신설되고 추가되는 사업이 생기는 만큼 기존에 포함됐던 사업이 빠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예정처는 아동수급 대상자에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한다거나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액의 일부를 환급하는 정책, 소규모 개인사업자에 대한 부가가치세 부담을 낮춰주는 사업 등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와 인과관계가 낮다고 분석했다.

예정처는 이번 추경안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피해 지역·업종의 경기 회복에 간접적인 영향은 미칠 수 있지만, 직접 지원에 비하면 그 효과는 크지 않다”면서 시급성 측면에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재정 건전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정부는 이미 기존 추경안을 짜면서 2019년 기준 한국은행 잉여금 7111억원과 기금 재원 6913억원을 제외한 10조3400억원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키로 했다.

이 규모는 2009년(22조원), 2013년(15조8000억원)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크다. 추경안 총 규모 대비 비중은 88.0%로 2018년(91.3%)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대표적인 추경 재원 중 하나인 세계잉여금이 619억원에 불과했던 탓이다. 이마저도 전액이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정산하는 데 사용됐다.

이에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주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올해 본예산 -3.5%에서 -4.1%까지 커진다.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 개요 자료를 보면 이 수치는 당초 2021~2023년 -3.9%로 관리할 계획이었지만, 추경을 계기로 ?4.0%까지 올랐다.

올해 805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던 국가채무는 추경으로 815조5000억원까지 오른 후 2021년 898조원, 2022년 980조9000억원, 2023년 1071조7000억원까지 급속도로 불어난다. GDP 대비 비율은 올해 41.2%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한 후 2021년 43.5%, 2022년 45.7%, 2023년 47.9%로 치솟는다.

국가 재정이 건전한지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대신 관리재정수지와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을 각각 -3%대와 40% 이하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다. 재정 당국은 지난해 500조원이 넘는 ‘슈퍼 예산’을 짜면서도 이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지켜 왔지만, 코로나19라는 ‘블랙 스완’(Black Swan, 발생 가능성은 작지만 한 번 일어나면 극심한 충격을 동반하는 현상을 지칭) 앞에 결국 무릎을 꿇게 됐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경제연구부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경우를 대비해 2차 추경 등 추가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여력을 비축해야 한다”면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돈을 써 버리면 불용 등으로 비효율적인 지출이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에 반영돼 있는 사업만 제대로 시행해도 경기 부양 효과는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규모 확대 논의는 이르다”고 재차 강조하며 “국채 발행 규모를 늘린다면 이 빚을 미래에 어떻게 상환할지 세출 구조조정 계획 등이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

예정처 역시 “지금까지 확보한 재정 여력을 소진할 경우 경제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 수단의 폭이 좁아지게 된다”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긴요한 재정 사업을 마련하되, 증가되는 국가채무 규모를 관리하기 위해 불요불급한 재정 지출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짚었다.

예정처는 “적극적 재정 정책에 따라 지출 예산만 늘린다고 자연히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비과세·감면 정비, 탈루소득 과세 강화 등 세입 기반 확충 노력도 지속해서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눈앞에 둔 정부는 중·장기적 차원에서의 대비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예결위 답변 과정에서 “올해는 향후 40년을 내다보는 장기 재정 전망을 진행 중”이라면서 “중·장기적 차원에서의 재정 준칙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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