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사랑했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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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사랑하는 것/함정임 지음/248쪽·1만3500원·문학동네

이별을 마주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대부분의 이별이 내 선택의 영역 밖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 그럴 테다.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은 작가 함정임(56)의 새 소설집 ‘사랑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새겨지고 파기되고 지워지는 방식’, 이별을 얘기하고 있다.

사랑이 새겨지고 파기되고 지워지는지조차 모르게 선험적인 듯 자리하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의 부재를 껴안게 되거나(‘용인’), ‘…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머물 수도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엄마의 부음으로 깨닫게 되고(‘스페인 여행’), 자신의 남자와의 엇갈린 사랑을 알게 되며 ‘한 사람의 생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한다(‘영도’).

이별은 죽음이라는 형태로 다가올 때 감당하기 어렵다. 그 죽음이 기억 속에 아무런 자취 없이 열병으로만 남아있을 때는 더하다. ‘용인’에서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때 K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찾는다. 17년 전 네 살배기 K는 아버지가 묻힌 묘지를 철모르고 뛰어다닌 뒤 사흘간 고열에 시달린다. 그 어렴풋한 기억의 끝자락을 쥐고 어머니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K. 그는 기억의 시원을 좇아가며 ‘자신의 삶을 복원하거나 완성해가는 과정’을 겪고 아버지의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스페인 여행’에서 내가 프랑스 파리의 사라진 극장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기억의 복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되었던 극장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고 ‘단숨에 쥐시외거리로 달려갔다. 29번지. 그런데 극장은커녕 그저 그런 아파트에 불과한 건물만이 싱겁게 서’ 있는 것이다.

작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별은 출구 없는 어둠의 길 같겠지만 ‘한 사람을 사랑했다’는 그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별은 마주할 만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삶과 소설이/앞서거니 뒤서거니/오롯이/한 세상이다/나는 다만, 빌려/썼을 뿐’이라는 작가의 말을 따른다면 이 책을 읽으며 생전의 한 젊은 소설가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사랑을 사랑하는 것#함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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