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매출 ‘0원’…대기업 이어 중소협력업체로 번지는 ‘도미노 불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5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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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서울 시내 면세점과 백화점에 잡화 제품을 납품하는 A 브랜드는 3월부터 제품 생산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입소문이 나며 한국에 들르면 반드시 사야하는 ‘K패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지만, 최근 한 달 새 매출이 10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루 매출이 ‘0원’인 날도 여러 번 있었다. A 업체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기업 유통사만 힘들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라며 “우리를 비롯해 말단 생산업체까지 어려움을 겪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대형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협력사 및 생산업체로까지 경영난이 번지고 있다. 수요 감소로 생산량을 줄이는 업체뿐 아니라 재고로 쌓인 상품을 폐기하는 곳까지 발생하자, 업계에선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도미노 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면세점과 거래해오던 업체들의 사정이 특히 심각하다. 해외여행을 계획했던 고객들이 항공편을 취소하며 상품 주문마저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A 브랜드의 경우 재고 물량을 회수해야 하는 탓에 면세점 매출은 현재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면세점으로부터 다음달 예정돼 있던 상품 주문이 최근 취소됐단 얘기를 전달 받았다는 또 다른 뷰티브랜드 관계자 역시 “당장 수십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주요 면세점에선 화장품 등 협력사 발주량을 지난달부터 20~50%가량 줄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국내 주요 면세업체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재고가 쌓이고 있어 (발주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패션 등 계절성이 강한 상품은 앞으로 발주량이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전국 70개 대리점과 백화점 입점 매장을 둔 B 브랜드는 2월 가방과 신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5% 이상 감소했다. 또 다른 국내 중견 의류 업체 C 사는 중국에서 비즈나 레이스 등 부품 배송이 일주일 이상 지연돼 신상품 출시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B 브랜드 대표는 “영업이 마비되면서 공장과 매장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만 고스란히 부채로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일부 농수산물 연계 제조업체들도 역풍을 맞고 있다. 표고버섯 재배에 필요한 톱밥배지를 납품하는 중소기업 D사는 지난달 중순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버섯 주요 납품처인 대형마트를 찾는 손님이 급감하면서 톱밥배지 주문이 끊겼기 때문이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휴업 전 배양을 시작한 톱밥배지 6억5000만 원어치 물량 가운데 이미 3억 원 어치를 폐기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일부 대형 유통업체들은 ‘대출 기금 조성’, ‘협력업체 주문 대금 선 결제’와 같은 상생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5일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는 5000여 개 중소 협력회사에 8000억 원 규모의 상품 결제 대금을 조기 지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소업체의 불안감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월 소매판매 증감률은 전월 대비 ―3.1%로, 2011년 2월 이후 8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B 브랜드 대표는 “현재로선 별다른 대안이 없다”며 “소비 심리가 반전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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