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수’는 유쾌한 숙명… 싱글 연작으로 하루하루 버텨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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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싱어송라이터 조규찬… 스무번째 싱글 ‘오래된 가수’ 발표

지난달 25일 만난 싱어송라이터 조규찬. 그는 박선주(‘소중한 너’)부터 박완규(‘Without You’)까지 다양한 이와 듀엣을 할 정도의 탄탄한 가창력, 전 장르를 넘나드는 작사·작곡·편곡 능력을 겸비한 드문 가수다. 조규찬 씨 제공
지난달 25일 만난 싱어송라이터 조규찬. 그는 박선주(‘소중한 너’)부터 박완규(‘Without You’)까지 다양한 이와 듀엣을 할 정도의 탄탄한 가창력, 전 장르를 넘나드는 작사·작곡·편곡 능력을 겸비한 드문 가수다. 조규찬 씨 제공
‘한때는 새 노래를 내놓으면/한때는 인터뷰 제의도 들어오곤 했던 나였지.’(조규찬 ‘오래된 가수’ 중)

2월 중순, 이런 가사의 처연한 신곡 발라드를 듣고는 해당 가수에게 전화 한 통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뷰, 하시죠.’

그렇게 해서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학동로의 한 카페에서 싱어송라이터 조규찬(49)을 만났다.

“오래된 가수, 이것은 은유입니다. 어떤 삶이든 어떤 분야에서든 우리는 내리막길에 닿는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이 시대를 사는 수많은 ‘오래된 가수’에 관한 얘기죠.”

그가 뒤통수부터 치고 시작했다. “기대치를 못 맞춰 미안하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그는 올해 마침 데뷔 30년을 맞았다. 1990년 그룹 ‘새바람이 오는 그늘’ 멤버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30주년에 대해) 별생각이 없어요. 공백이 꽤 있었거든요. 마치 연인처럼 음악과 싸웠다 다시 만났다 했죠. 그러니까 스스로 제 머리에 꽃가루를 뿌리며 무대에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피하고 싶어요.”

2010년 9집 ‘9’ 이후 8년을 쉬었다. 간간이 이문세(2015년), 윤종신(2016년)의 노래를 작곡, 편곡해주긴 했다.

“2010년 가을, 미국으로 떠나 3년간 재즈 보컬 석사 과정을 밟았어요. 강의 듣고 연습하고, 영화 ‘늑대와 춤을’에 나올 법한 일리노이주의 나무집에서 가족과 보낸 시간이 행복했죠.”

귀국 후 유튜브에서 중년의 수다를 푸는 코너를 진행하다 “친구들끼리 모여 뚱땅거리며 음악 만들던 그 옛날 재미”가 다시 떠올랐다. 조규찬은 2018년 7월 ‘비 온 날’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손수 작사 작곡 편곡한 신곡 하나씩을 매달 디지털 싱글로 발표한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조용하게, 성실히. ‘오래된 가수’는 스무 번째다.

“원래는 앨범 단위로 장편소설처럼 음악을 발표하던 사람인데 지금 음악 시장에는 제게 적당한 매대(賣臺)가 없는 듯합니다. 어쩔 수 없이 꾸준히 단편을 내는 셈이죠.”

그는 미국 소설가 오 헨리(1862∼1910)쯤 되려는 듯하다. 팝, 록, 재즈, R&B, 힙합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특유의 천재성을 1년 반 넘게 발휘 중이다. 시놉시스와 음악적 장치가 매번 흥미롭다. ‘운석충돌전야’(2018년 12월 싱글)에서는 63빌딩 옥상의 종말 파티를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노래하더니, ‘하루’(2019년 4월 싱글)에선 스마트폰에 중독된 현대인의 일상을 상큼한 어쿠스틱 팝에 담았다.

“소식이 뜸해지는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이 안타까워요. 저 역시 겨우 버티고 있죠. (싱글 연작은) ‘너 뭐 하는 사람이야?’에 대한 자답입니다.”

조규찬은 싱글 표지 그림까지 모두 직접 그렸다. 주로 연필과 파스텔을 쓴다. 동국대 서양화과를 나온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외에는 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열아홉 순정’ ‘닐리리 맘보’를 만든 고 나화랑 작곡가(본명 조광환)가 부친, 가수 고 유성희 씨가 모친인 음악가 집안이었지만, 대학 시절 데이비드 포스터와 스팅에 빠지고서야 방향을 틀었다. 1989년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최고상(‘무지개’)을 받으며 그 방향은 운명이 됐다. 장필순 이소라 변진섭 임창정 등 수많은 가수들에게 곡을 써줬다.

싱글 표지(시계방향으로 ‘오래된 가수’ ‘Dream Coast’ ‘순간들’ ‘중년’)도 손수 그린다. 조규찬 씨 제공
싱글 표지(시계방향으로 ‘오래된 가수’ ‘Dream Coast’ ‘순간들’ ‘중년’)도 손수 그린다. 조규찬 씨 제공
‘오래된 가수’의 표지는 피카소의 그림 ‘늙은 기타리스트’를 재해석한 것. 원화에는 없는 빛을 화면 오른쪽에 넣어 어둠 속 온기를 은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난/지워져 사라져 가’라 노래하던 화자, 조규찬은 노래의 피날레를 이렇게 장식한다.

‘그럼에도/이런 내 노래를 들어주는 그대여/고마워요/고마워요.’

그는 7일 스물 한 번째 싱글 ‘Bye My Youth’를 낸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싱어송라이터#조규찬#오래된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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