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재판의 학습효과와 출구전략[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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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의 유무죄 판단 넘어선 정책 결정권자의 상상력 필요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검찰청사 주변에서 검사와 직원들은 타다 이용을 삼가 달라.”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은 타다 운영사인 VCNC의 박재욱 대표와 VCNC의 모회사 쏘카의 이재웅 대표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이 같은 내부 지침을 내렸다. 기소 주체인 검찰이 타다를 이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약 9개월 전인 같은 해 2월 택시업계가 타다를 불법 택시 영업으로 처음 고발했을 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수사팀 검사 대부분은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며 타다 이용을 ‘보이콧’했다. 당시 검찰 지휘부에도 이용 자제가 권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착수 8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28일 검찰은 기소 결정을 내렸다. 혁신적 모빌리티 산업을 표방한 타다는 실제로는 불법 콜택시 영업이라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었다. 기소 당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들이 기소 여부를 놓고 회의를 했는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법에 저촉되거나 법률로서 보호해야 하는 다른 제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면 현행법 규정대로 판단을 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법원에선 검찰의 결론이 뒤집혔다. 유죄가 인정됐을 경우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합의재판부가 아닌 단독재판부로 사건이 배당됐다. 무작위 사건 배당으로 서울중앙지법의 형사18단독 박상구 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25기)가 재판장이 됐다.

정보기술(IT) 동향 등을 연구하는 정보법학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그는 현재 이 학회의 감사를 맡고 있다. 1996년 4월 판사와 변호사, 교수 등이 설립한 이 학회는 정보 혁명과 법 제도의 변혁을 연구하는 곳이다. 학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정보사회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제반 법률문제를 분석 진단하고, 그 해법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주요 역할로 소개하고 있다.

박 부장판사는 2014년 가을 이 학회의 정기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토론 주제가 공유경제였다. 세미나 자료를 보면 우버, 에어비앤비 등을 포함한 최신 공유경제 사례를 논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법관들의 연구 모임인 사법정보화연구회의 간사를 지낸 적도 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1일 이후 결심과 선고를 제외하면 2차례 공판을 열었다. 그는 지난달 20일 불법 콜택시가 아니라 합법적 렌터카라며 박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 무죄 이후 항소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공소심의위원회를 열었다. 공소심의위엔 외부위원은 없었고, 검사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스타트업계 자문 변호사와 국토교통부 관계자, 택시업계 측 전문가 등의 의견을 약 40분씩 차례대로 청취한 뒤 전원일치로 항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2심에서 판결이 달라질 수 있는데 항소를 포기한다는 것도, 국회의 법 개정 방향이 타다 금지 쪽이라면 검찰로서는 사실상 공소 유지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검찰이 기소 단계부터 외부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포함된 공소심의위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부패 범죄와 달리 미래 신생 산업의 위법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검찰이 좀 늦더라도 더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짜 문제는 검찰과 법원이 4개월 간격을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사이 정부 부처와 입법부 등 정책 결정권자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1심 재판장은 항소심과 그 이상의 재판을 예상한 듯 선고 공판을 다음과 같이 끝냈다. “택시 등 교통이동수단, 모빌리티 산업의 주체들, 플레이어 규제 당국이 함께 고민해서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는 길이 계속될 재판의 학습효과이자 출구전략이다.” 현행법 해석에 대한 유무죄 다툼을 산업 주체와 정책 결정권자들이 하루빨리 뛰어넘어야 한다. 신생 산업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타다#공유경제#모빌리티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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