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극복 메시지 ‘전진 배치’…정세 언급 줄어든 3·1절 기념사

  • 뉴시스
  • 입력 2020년 3월 1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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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인식 반영"…기념사 준비 과정에서 대폭 수정
대북·대일 메시지 축소…코로나 차단 국제협력 일환 속 언급
독립운동 역사 속 '희망·승리' 메시지 부각…코로나 극복 의지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제101주년 기념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 나19) 극복을 위한 메시지 중심으로 채워졌다.

한일·남북 관계 등 한반도 정세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거대 담론 제시 대신,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에 집중한 대국민 메시지 성격이 짙었다.

한일 관계와 남북 관계 개선 구상 역시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한 공동 대응 제안 형태 위에서 간략히 풀어냈다.

문 대통령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 본관 앞에서 열린 제101주년 3·1절 기념식에서 4800자, A4용지 4장 분량의 기념사를 남겼다.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언급한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메시지로 채워졌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는 잠시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지만 우리의 단합과 희망을 꺾을 수 없다”며 “억압을 뚫고 희망으로 부활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이 지난 100년 간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 됐듯, 우리는 반드시 ‘코로나19’를 이기고 우리 경제를 더욱 활기차게 되살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가적 위기와 재난을 맞이할 때마다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살려냈다”며 “단합된 힘으로 전쟁과 가난을 이겨냈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이다. 우리 모두 서로를 믿고 격려하며 오늘을 이겨내자”며 “새로운 100년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가자”고 했다.

3·1절은 광복절과 함께 남북 문제와 한일 문제를 비롯해 동북아 정세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철학, 정책방향 등이 녹아든 국가비전을 소개하는 무대로 여겨진다. 대통령의 정책 구상이 집약돼 있어 향후 대내·외 정책추진 방향을 읽을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100년 후 도래할 미래 한반도의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신(新) 한반도 체제’ 구상은 지난해 100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문 대통령이 이날 “용기와 희망으로 새로운 100년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나가자”고 한 것도 이런 맥락 위에서 풀이된다.

이처럼 코로나19 극복과 관련한 메시지가 전면에 배치된 것은 문 대통령의 절박한 인식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국면을 최대 위기로 간주하고 극일(克日) 정신을 강조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정권의 운명은 코로나19 대응 여부에 따라 달려있다”며 엄중한 인식에 따라 확산 저지에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이라는 역사 속에서 소환한 것은 다름 아닌 ‘승리’와 ‘희망’이라는 자신감이었다. 독립운동 역사 속에서도 저항 정신과 ‘자강·자립’ 정신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3·1독립운동이 만들어낸 희망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싶다”며 “노동자들은 일제의 수탈과 억압에 저항했고 기업가들은 근대적 기업을 일구기 위해 분투했으며 국민들은 민족경제 자립운동을 펼쳤다”고 소개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우리 국민 역시 극복을 통해 충분히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섞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1951년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외환위기가 덮쳐온 1998년에도, 지난 100년간 우리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3·1독립운동을 기념하며 단결의 ‘큰 힘’을 되새겼다”고 언급했다.

단합된 3·1독립운동 정신이 6·25 한국전쟁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이 된 지난 100년의 시대정신이었다면 코로나19 극복을 통해 새 100년의 시작을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반면 기존 3·1절 기념사의 대부분을 채워왔던 대북·대일 메시지의 분량은 대폭 축소됐다. 기념사 초안 작성과 강독(講讀) 과정에서 코로나19를 매개로 한 메시지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금 세계는 재해와 재난, 기후변화와 감염병 확산, 국제테러와 사이버 범죄같은 비전통적 안보위협 요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며 “한 국가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통해 초국경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막는 초국경 간 협력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통합의 정신을 담고 있는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코로나19의 국제 확산을 막는 데 필요한 초국경 협력은 3·1운동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은 물론 인접한 중국과 일본,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 북한과도 보건 분야의 공동협력을 바란다”며 남북 공동 대응을 위한 협력을 공개 제안했다.

이어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고 접경지역의 재해재난과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할 때 우리 겨레의 삶이 보다 안전해질 것”이라며 “9·19 남북 군사합의를 준수하며 다양한 분야의 협력으로 넓혀 나갈 때 한반도의 평화도 굳건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해 초국경 협력이 불가피하며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과의 협력부터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때 남북 공동방역 협력을 추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읽힌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협력 사업 본격 추진의사를 밝혔음에도 북한의 호응이 없자, 코로나19 차단을 계기로 접경지역 협력 확대를 풀어가자는 새로운 제안을 통해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서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을 전제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한일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직시해야만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존 인식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며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침략행위에 무력으로 맞섰지만 일본에 대한 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동양평화를 이루자는 것이 본뜻임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1 독립운동의 정신도 같았다. 과거를 직시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며 “과거를 잊지 않되,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 역사를 거울삼아 함께 손잡는 것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길”이라며 “함께 위기를 이겨내고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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