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중과 ‘집관’ 사이[오늘과 내일/김종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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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 꿈과 희망 준 스포츠… 소중한 일상 되찾는 힘 돼주길

김종석 스포츠부장
김종석 스포츠부장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농구장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다. 적막한 코트를 뚫고 감독의 작전 지시가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는 수십 m 밖까지 그대로 전달됐다. 지난 주말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KB스타즈와 신한은행의 경기 모습이다. 썰렁한 분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관중 없이 경기를 치렀기 때문. 평균 2000명 안팎의 관중이 들어찼던 걸 감안하면 낯선 환경에 처한 선수들의 표정은 영 어색해 보였다. 국가대표 박지수(KB스타즈)는 “정말 힘들 때 팬분들 응원 함성이 들리면 엔도르핀이 도는 느낌이 든다. 더 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는 농구와 배구는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았다. 남녀 농구와 배구 모두 기약 없는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있다. 시즌 개막을 앞둔 축구와 야구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야구는 1982년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시범경기를 취소했다.

이번 사태는 스포츠의 존립 기반, 선수(구단)와 팬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연세대 농구부 감독 시절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은 선수들에게 이런 명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 수 있느냐. 운동선수들이 돈도 벌고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잘해라.” 팬 퍼스트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일부 고액 연봉 스포츠 스타들의 안하무인 태도나 팬들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은 끊임없이 원성을 사 왔다. 경기 후 어린이들의 하이파이브 요청을 외면하거나, 사인회 등 팬 서비스 행사라면 거절하기 일쑤인 고압적인 선수도 아직 많다.

있을 때 잘하라고 했던가. 휑한 객석을 바라보는 선수 가운데는 팬들을 향한 그리움에 ‘앞으론 달라져야지’라는 다짐도 하게 되리라. 며칠 전 생애 첫 무관중 경기를 치른 프로농구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흥이 안 나더라. 선수들에게 이럴수록 더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미국 덴버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구단의 연고 도시 이혼율은 야구팀이 없는 도시보다 28% 낮았다고 한다. 마이애미와 피닉스의 이혼율은 야구단 유치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30%까지 줄었다. 덴버대 하워드 마크먼 심리학과 교수는 “건전한 결혼 생활에는 재미와 우애가 중요한 가치다. 야구를 즐기고 대화하는 과정은 사랑을 지키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분석했다. 스포츠 관람이 삶의 질과 행복을 높여주고 두뇌 개발과 언어 이해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긍정적인 효과가 많은 스포츠 관람을 경기장에서 즐기는 ‘직관’이 어렵다면 집에서 게임을 지켜보는 ‘집관’은 어떨까. 기술 발전으로 TV, PC,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한 경기 관전도 얼마든지 승부의 짜릿함을 느낄 만하다. 장원석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스트리밍으로 다른 팬들과 실시간 대화를 나누는 등 집에서도 관전의 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비록 무관중이지만 구단들도 팬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곽대희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무관중 경기라도 가능하다면 해야 한다. 다만 선수나 스태프 보호 의무도 있다. 팬들의 볼 권리만큼 선수들이 마음 놓고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날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등의 활약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한숨짓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선수와 팬들이 격려 글이나 선플(착한 댓글)을 주고받는다면 어떨까. 비록 눈앞의 현실은 답답하지만 움츠러들 수만은 없다. 하루빨리 소중한 일상이 제자리를 찾게 되기를. 스포츠도 보약이 됐으면 좋겠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코로나19#무관중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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