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본고장 사로잡은 한국의 목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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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김주택은 베네치아서 ‘사랑의 묘약’ 장교역 맡아 열연
베이스 박종민-소프라노 임세경은 빈 국립오페라극장서 감동의 무대

당초에 한국인 성악가들의 공연만 찾을 계획은 없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스트리아 빈에 이르는 오페라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유럽 무대를 주름잡는 한국인 스타들의 무대가 저절로 ‘걸려’ 들어왔다.

22일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라 페니체(불사조) 극장.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바리톤 김주택이 출연했다. 순진한 농부 네모리노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장교 벨코레 역이다. 공명점이 다소 높이 위치하고 지적인 품격이 느껴지는 김주택의 노래결은 배짱 좋고 여유 넘치는 기존의 벨코레 상에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이 극장의 팬들에게 그는 2018년 출연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노신사 제르몽 역으로 가장 먼저 기억되어 왔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 네모리노의 승리를 쿨하게 인정하는 뒤끝 없는 벨코레의 모습에는 김주택의 온화한 노래가 오히려 더없이 들어맞았다. 주역들과 합창단을 쉴 새 없이 춤추고 흔들거리게 한 연출가 안드레아 치니의 구도 속에서 각 잡힌 그의 연기는 무대 위에 강한 한 점을 만들어냈다.

사흘 뒤인 25일 빈 국립오페라극장(슈타츠오퍼). 마스네 오페라 ‘마농’에 이 극장 전속가수인 베이스 박종민이 남주인공 데그리외의 부친인 데그리외 백작 역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냉정함과 사려, 야비함을 함께 갖춘 복합적 인물이다. 박종민은 정면과 무대 뒷면을 동시에 울리는 깊은 저음으로 이 역할을 그려 맞춘 듯이 소화했다. 이날을 장악한 최고의 스타는 넉넉한 볼륨의 여유를 갖고 호소력 있는 피아니시모까지 정밀하게 소화한 데그리외 역의 테너 장프랑수아 보라스였지만, 관객들은 그에게 뒤지지 않는 커다란 ‘브라보’를 박종민에게 보냈다.

다음 날인 26일 빈 국립오페라극장 무대를 ‘훔친’ 주인공은 푸치니 ‘나비부인’ 타이틀롤을 소화한 소프라노 임세경이었다. 2015년부터 같은 역을 맡아 이 극장 팬들에게는 낯익은 ‘초초상’(나비부인의 여주인공)이다. 아담한 체구의 임세경은 파바로티를 연상시키는 거구의 테너 파비오 사르토리와 대등한 볼륨으로 풍성하기 그지없는 1막 신혼의 이중창을 함께 뿜어냈다. 2막 자결 직전의 극적인 아리아 ‘하늘에서 내려온 내 아이야’에서 극장 천장을 찌르는 듯한 강력한 고음의 포르티시모는 관객들의 숨을 한동안 멈추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독일을 중심으로 강력해지는 한국인 성악가들의 파워는 사흘 동안 마주한 현장 관객들의 자연스럽고도 열렬한 반응에서 확인되었다. 빈 관객들은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박종민과 임세경은 친숙하고도 안정감을 갖춘 빈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주택이 22일 장교 벨코레로 열연한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은 이탈리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 이틀 뒤인 24일부터 휴관에 들어갔다. 가면 분장으로 유명한 베네치아 카니발도 23일부터 중단되었다. 기자로서는 운이 따른 일정이었다.
 
빈·베네치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페라#김주택#박종민#임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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