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훈육’이 어려워[글로벌 이슈/이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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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는 매체 이해력을 높이는 교육이 중요하다. 비영리단체 커먼센스미디어 교육 담당자는 온라인 저널리즘을 주제로 자녀와 자주 대화하되 질문을 많이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 출처 Pexels
청소년기에는 매체 이해력을 높이는 교육이 중요하다. 비영리단체 커먼센스미디어 교육 담당자는 온라인 저널리즘을 주제로 자녀와 자주 대화하되 질문을 많이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 출처 Pexels
이설 국제부 차장
이설 국제부 차장
“부모가 된 디지털네이티브(디지털) 세대가 디지털 훈육에는 오히려 서툴다.”(미국 IT 매체 ‘와이어드’ 최근 기사)

세계적으로 PC에 친숙한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 출생은 디지털 1세대, 유튜브와 더불어 성장한 1990년대 중후반 출생은 디지털 2세대로 분류된다. 최근 부모가 된 이들이 10대 시절부터 디지털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면, 3세대격인 자녀들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디지털과 함께한다. 출산, 첫걸음마, 첫 배변훈련 성공 등이 엄마나 아빠의 소셜미디어에 전시되는 것은 기본. 자장가 대신 백색소음 애플리케이션을 들으며 잠들고, 뜻깊은 순간은 앨범이 아닌 유튜브에 저장된다.

하지만 디지털 세대들이 자녀의 PC, 모바일 등을 통제하는 디지털 훈육은 더 어렵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정보기술(IT) 매체 와이어드는 최근 ‘아이를 디지털 강자로 키우는 방법’이라는 기사에서 “1700만 명에 달하는 디지털 세대는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만 이런 경험이 훈육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보도했다. 격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을 피하기 위해 생후 36개월 이전에 동영상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식 정도는 알지만, 자녀의 성장시기별로 맞닥뜨리는 문제 상황에서는 쩔쩔맨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디지털 훈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다양한 층위의 이슈 가운데 우선 ‘토들러 셀피’(유아 셀카)가 눈에 띈다. 눈썹만 찍힌 사진, 지나치게 흔들려 유령처럼 나온 사진, 아래쪽에서 콧구멍을 부각해 담은 사진…. 인스타그램에서 토들러 셀피를 검색하면 ‘아방가르드한’ 사진들이 줄줄이 뜬다. 아래에는 “저장 공간이 꽉 차서 사진첩을 봤더니 아이가 카메라 버튼을 수십 번 눌렀다”, “세 살배기가 셀카에 푹 빠졌다” 등의 설명이 달려 있다.

디지털 노출에 민감한 부모들도 유아 셀카에는 너그러운 경향을 보인다. 단순한 놀이인 데다 찍는 아이와 결과물을 받아든 부모 모두가 즐겁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아 셀카를 21세기 옷을 덧입은 거울 놀이로 본다. 크리스틴 매클린 세인트빈센트대 소아청소년학과 교수는 최근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 인터넷판에서 “1∼3세는 자아 정체감이 싹트는 시기다. 유아는 이때 처음으로 부모와 자신이 별개라는 걸 인식한다”며 “그 관념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셀카는 최고의 놀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다. 아동심리학자인 애덤 플리터 박사는 “유아 셀카는 발달단계에 이롭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다른 기능도 접하게 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셀카를 찍는 건 반대”라고 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디지털 강자’에 관심이 많다. 뺏고 숨기고 야단쳐도 디지털 기기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래 경쟁력을 갖추는 데 디지털 능력이 이롭다는 시각도 있다. 자녀를 디지털 강자로 키우자는 주장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현실적 목소리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디지털 강자가 되기 위한 제1조건은 ‘디지털 문해력’(디지털 정보를 비판적으로 소화하는 힘)이다. 아동은 성인보다 가짜 정보에 취약하다. 인사이트전략그룹의 지난해 3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아동의 75%가 유튜브 광고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이처럼 보이는 광고로 무장한 키즈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8세 전후 어린이는 ‘악마의 마케팅’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숨은 광고 찾기나 정보 흐름 추적 게임을 하라고 조언한다. 문답을 통해 책을 깊이 읽는 독서논술처럼, 디지털 정보를 해체하는 연습도 도움이 된다. 페이스 로고 미 문맹퇴치교육협회 회장은 “디지털 문해력은 도로 규칙 같은 기본기에 가깝다. 훈련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고 했다.

디지털네이티브란 용어는 1996년 발표된 서정시 ‘사이버공간 독립선언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현재, 지구촌의 디지털 시차는 ‘제로’에 가까워졌다. 디지털 세상과의 올바른 관계 맺기는 국경을 넘나드는 이슈다. 미국 디지털 세대 부모의 고민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
#디지털네이티브 세대#디지털 훈육#디지털 문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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