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수좌의 가슴은 만 장의 얼음이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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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좌 적명/적명 지음/232쪽·1만2600원·불광출판사

“하루 열두 번 참회해도 부족하고 백 번을 새롭게 다짐해도 오히려 모자란다. 수좌의 마음속에 안이함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는 자긍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수좌의 가슴은 천 개의 칼이요, 만 장의 얼음이어야 한다.”

출가 60여 년간 선(禪) 수행에 몰두해 ‘영원한 수좌(首座)’로 불리던 봉암사 적명 스님의 유고집 ‘수좌 적명’(불광출판사)에 실린 문장이다. 지난해 12월 갑작스럽게 80세를 일기로 입적한 그는 생전 수행과 후학 지도를 ‘중이 중다워지는 것’으로 여겨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았고 글을 남기는 것도 꺼렸다.

책은 스님이 1980년부터 2008년까지 쓴 일기에서 70편의 글을 뽑았고 선방에서 했던 짧은 법문, 드물게 남은 추모사 등을 보탰다.

책은 스님을 닮았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단도직입의 솔직함이 매력적이던 스님의 삶이 담겨 있다. 1983년 4월 어느 날 ‘구도심’이라는 글은 이렇다. “…/일발 강타에 넘어지는 KO도 있고,/누적된 충격 때문에 무너져가는 점진형 KO도 있다.…” 스님은 수행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원인을 ‘펀치’에 비유했다. ‘수좌 적명’은 낭만적인 출가 스토리도 아니고 이른바 큰스님들의 책에서 보이는 익숙한 장식도 없다. 부처님 제자로 살고자 평생 갈고닦아 온 한 수좌를 만날 수 있다.

김갑식 문화전문 기자 dunanworld@donga.com
#수좌 적명#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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