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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好통/김민]‘기생충’에 숟가락 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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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好통/김민]‘기생충’에 숟가락 얹기

김민 기자 입력 2020-02-17 03:00수정 2020-02-17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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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드높인 예술인에게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가 ‘숟가락을 얹는’ 관습이 영화 ‘기생충’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영화 속) 기택 네 반(半)지하 집 세트 복원’부터 ‘봉준호 영화박물관’까지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봉 감독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달서병)이 “대구 남구에서 태어나 세계에 이름을 떨친 봉 감독은 한국의 자랑”이라며 “대구 신청사 앞 두류공원에 봉준호 영화박물관을 건립해 관광 메카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대구 남구는 “봉 감독이 어렸을 때 살던 주택을 중심으로 영상문화사업이나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4·15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예비후보들 사이에서는 ‘봉준호 카페거리’ ‘봉준호 생가 터 조성’ ‘봉준호 동상’에 ‘기생충 조형물 설치’ 공약까지 등장했다. 온라인에서는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삼성역 옆에 있는 거대한 양손 모양의 ‘강남스타일’ 조각상이 떠오른다. ‘기생충 조형물’은 막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기생충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집 세트가 조성됐던 경기 고양시의 이재준 시장은 “세트를 복원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이고 스토리가 있는 문화관광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 없이 인기에만 편승해 기념관 등이 생긴다면 지속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봉 감독과 작품 자체에 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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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교사가 ‘백남준 기념사업’이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1990년대 귀국했을 때 그의 명성에 기대어 각종 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았다. 기념관도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참담하다.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백남준 에스테이트’는 한국 미술계 누구와도 협조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 저작권자에 대한 인식과 존중도 없이 백남준의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협의도 없이 백남준의 이름을 건 미술관을 세우려는 시도들이 신뢰를 허물었다. 올해 세계 5개 도시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열리지만 국내 어떤 미술관도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고국에서 볼 수 없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생충 공약’을 내건 정치인과 지자체는 봉 감독이나 제작사 측에 저작권 문의라도 한번 해봤을까. 16일 귀국한 봉 감독의 미국 일정 전에 이들 공약이 쏟아진 걸 보면 매우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기생충’을 보기는 했을지도 궁금하다.

훌륭한 예술작품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도 전에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가슴 아프다. 소프트파워는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부가적으로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어두운 식으로는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기생충#봉준호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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