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스쳐지나쳤다면 ‘접촉자’? ‘베테랑’ 역학조사관의 답변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2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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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질본)에서 박영준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환자관리 2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역학조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2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질본)에서 박영준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환자관리 2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역학조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환자를 지나쳐 갔다고 무조건 ‘접촉자’가 되지 않습니다.”

12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질본)에서 만난 박영준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환자관리 2팀장이 말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면 그의 동선을 파악해 감염 가능성이 있는 접촉자를 찾아내는 역학조사를 맡고 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도 역학조사를 담당했다.

박 팀장은 “단순히 지나쳤다고 비말 감염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박 팀장과 질본에 따르면 현재 접촉자 분류 때 우선 확인하는 건 ‘거리’다. 신종 코로나 환자와 2m 이내에서 얼굴을 마주한 채 대화한 사람은 접촉자가 된다. 직접적인 비말 접촉이 있어도 당연히 접촉자로 분류한다.

한 공간에서 마주치거나 잠깐 인사를 나눴다고 모두 접촉자가 되는 건 아니다. 중국인 관광객인 23번 환자(58·여)가 서울에서 백화점, 마트 등을 다녔지만 접촉자가 23명에 불과했던 이유다. 그는 “환자와 2m 안에서 대면했다면 상대방이 마스크를 썼어도 접촉자가 된다”고 설명했다.

2차 감염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처럼 상당 기간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6번 환자(56)와 같은 교회에 다닌 21번 환자(60·여)도 같은 경우다. 박 팀장은 “두 사람은 친한 교인으로 교회 안에서 대화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역학조사의 핵심은 환자 동선을 최대한 빨리 추적하는 것이다. 접촉자를 파악해 이들의 증상 유무를 확인해야 3차, 4차 감염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환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신용카드 사용명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록, 폐쇄회로(CC)TV까지 들여다본다. 박 팀장은 “카드내역이나 GPS 기록까지 확인해 조사하는 사례는 해외에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래도 접촉자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딪힌다. 환자가 다른 사람의 카드를 사용하거나, 사생활 공개에 따른 부담 때문에 자신의 행적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다. 박 팀장은 “동선 진술에 부담을 느끼는 분이 많다. 그럴 때에는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최대한 설득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동선을 진술하더라도 그 안에서 빠진 제3의 장소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환자가 밤 10시에 걸어서 거주지인 아파트로 돌아왔다고 진술했다면, 아파트 내 엘리베이터에서 접촉자가 있었을 가능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환자라면 분명히 식사를 했을 것이기 때문에 점심식사 장소를 확인하는 것이다.

CCTV를 분석하는 일도 쉽지 않다. 환자가 장소에 방문한 시점이 특정되지 않으면 하루 종일 CCTV를 뒤져야 한다. 환자의 인상착의만으로 화면 속에서 환자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박 팀장은 “CCTV 분석은 지루한 작업이지만 그럼에도 한 명의 확진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관들의 가장 큰 심리적 고충은 시간의 압박이다. 신종 코로나는 ‘1급 감염병’이기 때문에 확진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 병에 대한 정보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 사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환자도 나타날 수 있다. 제한된 정보에도 불구하고 추가 감염을 막으려면 신속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에 대응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박 팀장의 말이다.

“역학조사관 선서 첫 번째 내용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환자의 접촉자를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고, 관리 대상 안에서 확진자가 나와 추가 전파를 막았을 때 저희 역할을 잘 수행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청주=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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