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를 찌르는 반전, 디테일한 묘사…봉준호의 작품세계 분석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0일 2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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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포스터/뉴스1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포스터/뉴스1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과 무덤덤해 보이지만 가족 안에 흐르는 뜨거운 정을 꾸준히 그려왔다. 허를 찌르는 반전, 날카로운 시대정신과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봉 감독만의 블랙코미디 같은 독설이 세계 영화인으로 하여금 그의 작품 앞에 끊임없이 다가서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와 계급에 관한 관심은 봉 감독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첫 작품인 단편 ‘백색인’(1993년)은 주인공 W가 길에서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줍는 것으로 시작한다. 엘리트처럼 보였던 주인공의 이중적 모습을 통해 노사관계 산업재해 부당대우 문제를 비판한다. 1994년 연출한 ‘지리멸렬’은 역시 대학교수, 언론사 논설위원, 부장검사의 이중성을 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에 담았다.

일상에서 끌어온 소시민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블랙코미디적 요소는 그의 또 다른 코드다. 첫 상업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년)’는 아파트 단지에서 사라진 강아지를 둘러싸고 백수와 다름없는 시간강사 고윤주(이성재), 아파트 경리 직원 박현남(배두나), 경비실의 변경비(변희봉)가 벌이는 사건을 담았다. 강아지를 추적하는 스릴러이면서 난센스 코미디 장르까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영화다. ‘기생충’에 확연히 드러난 장르 허물기의 싹은 이때부터 품게 됐는지도 모른다.

한국영화가 프랑스 칸 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00년대, 봉 감독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작품성에 상업성도 인정받게 된다. 시작은 ‘살인의 추억’(2003년)이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물론 ‘과학수사’가 거의 불가능했던 현실을 꼬집으며 평단의 찬사도 받았다. 관객 510만 명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 송강호 배우와의 작업도 시작됐다.

봉 감독의 상업성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에서 출발한 이야기와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빠지지 않는 유머 코드가 이끌었다. 세 번째 작품 ‘괴물’(2006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한강에 등장한 괴물과 이에 맞서 싸우는 소시민 가족의 영웅적 모습은 흡사 ‘안티 히어로 영화’ 같았다. 그러나 결말은 평범한 가족의 재구성이었다.

200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된 네 번째 작품 ‘마더’(2009)는 세계의 영화인들이 봉 감독을 주목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는 해외 평단의 긍정적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을 발판으로 해외 배우와 스태프, 자본을 끌어들여 ‘설국열차’(2013년)와 ‘옥자’(2016년)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해외 영화계로 본격 진출한다. 그럼에도 봉 감독은 계급과 환경 문제를 화두로 내건 두 영화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았다.

그가 다시 한국어만으로 작업한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의 쾌거를 안게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봉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얘기하듯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치밀한 연출로 유명한데 결국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해낼 수 있었다. 이런 면이 역사적인 수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봉 감독에게도 성장으로 작용하겠지만 아카데미로서도 더 다양한 영화를 포섭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공통의 언어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오른 봉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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