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PCR 진단[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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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는 1983년 극소량의 유전자(DNA)만 있어도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는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기법을 개발했다. PCR 기법은 DNA 활용과 조작을 가능하게 해 ‘생명공학의 연금술’로 불린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공룡 복제 같은 유전자 복제나, 화성 연쇄살인 같은 장기 미제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유전자 지문 대조 등이 모두 PCR 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친자 확인 DNA 검사에도 PCR가 활용된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규명한 이후 최대의 혁명적 발견이란 평가와 더불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 PCR 기법이 7일부터 국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를 가려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 PCR 검사는 유증상자의 침과 가래 등 검체를 채취해 배양한 뒤 시약을 묻혀 바이러스 유무를 밝혀낸다. 검체에 바이러스가 3∼5마리만 있어도 잡아낼 수 있으며 6시간이면 된다. 기존 ‘판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는 17개 시도보건환경연구원과 질병관리본부에서만 할 수 있었고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제 PCR 진단 시약을 이용해 전국 40여 개 지정 민간 의료기관에서도 검사할 수 있다. 옛 검사법으로는 하루 160여 명을 진단할 수 있었으나 이 기법을 활용하면 3000명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PCR 기법은 이미 에이즈나 독감 인플루엔자 같은 바이러스 질환 진단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감염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으면 16만 원짜리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지난 주말 보건소와 병원에는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검사를 요청하는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혼잡을 이뤘다. 실제로 검사를 받은 인원은 약 700명. 정부는 이달 안으로 하루 1만 명까지 진단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PCR 기술이 있으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새로 등장해도 염기서열 등을 파악해 신속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는 시약 개발이 가능하다. 이번 신종 코로나 PCR 시약을 한국이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개발해 실전에 투입한 데는 국경을 넘는 과학자들의 네트워크와 국내 민관의 협업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공식적으로 환자 발생을 발표하기 전에 중국 과학자들은 새로 등장한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을 타국 과학자들에게 알렸다. 2015년 메르스 트라우마가 있는 국내 방역 당국과 의료계, 바이오업계는 상륙에 대비해 ‘적(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해 가며 시약 개발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세를 보여주지만 과학이 극복하지 못할 난적은 아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pcr기법#코로나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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