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불어난 R&D, 내실 기해야[현장에서/최혜령]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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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령 경제부 기자
최혜령 경제부 기자
5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2018년 기준 글로벌 1000대 연구개발(R&D) 투자 기업에 국내 기업 24곳이 포함됐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들이 투자한 금액은 총 287억 유로(약 37조6000억 원)였다. 한국이 미국(2867억 유로), 일본(993억 유로), 독일(794억 유로) 등에 이어 6위였다. 삼성전자는 148억 유로를 R&D에 투자해 전 세계 기업 중 2위였다.

이 같은 민간 기업들의 적극적인 R&D 투자는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국내 기업 중 R&D 투자를 늘린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6.68%였지만 R&D 투자를 줄인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3.04%에 그쳤다. R&D에 투자한 기업이 더 성장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체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한국은 R&D 강국이다. 개발연대 때부터 ‘기술 자립’을 위해 몸부림친 결과다. 2018년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R&D 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 2위를 다툰다. 한국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비결 중 하나가 R&D 투자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효율성이다. 민간 기업이야 당장 기업 실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R&D 비용을 허투루 쓸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정부 지원금을 타려고 ‘무늬만 R&D’를 하는 일부 회사를 빼면 그렇다. 하지만 민간 R&D 투자금의 절반에 이르는 정부 부문의 비효율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례로 지난해 1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 출연 연구소의 연구과제 성공률이 무려 99.5%다. 저는 이 수치가 자랑스럽지 않다”고 했다. 성공할 수 있는 과제에만 도전한다는 지적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국가 R&D 과제 성공률은 95∼98%를 오가지만 사업화 성공률은 20%에 그친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초과학 연구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과제 대신 연구비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분야에 몰린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연구 기관들이 정부 지원금에 길들여진 결과다.

이렇다 보니 국가 R&D 사업의 효율성은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꼴찌 수준이다. 31개 회원국 중 28위(2006∼2015년 기준)에 그친다. 재정 투입 대비 산출량과 기술 효율성 등이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에 훨씬 못 미친다는 뜻이다.

올해 정부 R&D 예산은 역대 최대인 24조200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과제가 많이 생겨나면서 덩치가 크게 불어났다. R&D 예산이 ‘지난해보다 얼마 늘었다’, ‘역대 최대다’ 하는 정부의 홍보보다 올해는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였다’는 평가가 나오길 기대한다.
 
최혜령 경제부 기자 herstory@donga.com
#r&d#연구개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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