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춘제 연휴 끝나고 중국인 일상 복귀할 때가 최대고비”[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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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신종코로나바이러스위원장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신종코로나바이러스위원장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학회의 메르스위원장을 맡았다. 그만큼 감염병 분야 전문가가 부족해서라고 했다. 그는 “전국의 40여 개 의대에서 올해 예방의학 전문의 과정에 지원한 사람은 단 7명뿐”이라며 “국제 교류가 잦을수록 역병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를 일이 많아지므로 예방의학을 연구하고 보건정책을 수행할 인재를 많이 길러 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신종코로나바이러스위원장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학회의 메르스위원장을 맡았다. 그만큼 감염병 분야 전문가가 부족해서라고 했다. 그는 “전국의 40여 개 의대에서 올해 예방의학 전문의 과정에 지원한 사람은 단 7명뿐”이라며 “국제 교류가 잦을수록 역병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를 일이 많아지므로 예방의학을 연구하고 보건정책을 수행할 인재를 많이 길러 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어린이집 10곳 중 1곳이 문을 닫았다. 헌혈 급감으로 응급 환자를 위한 혈액 보유량이 3일 치도 남지 않았다. 중국산 부품 공급이 끊겨 자동차 생산 라인이 멈췄다. 간병인, 3D업종 근로자, 관광객으로 환영받던 중국인들과 눈을 마주치기 꺼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한국 사회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3일 감염병 위기 경보는 ‘경계’ 수준이나 실제 대응은 최고 수준인‘심각’ 단계에 준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신종코로나바이러스위원장(55)은 4일 “방역 당국이 예상하지 못한 환자가 나왔다.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상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암관리학과 교수인 그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학회의 메르스위원장을 맡아 예방의학 전공의들과 민간역학조사관으로 방역 일선에서 뛰었다. 지금은 국내외 방역 동향을 정리 분석해 정부와 국회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4일 감염 경로가 불투명한 16번째 확진 환자가 나왔다.

“그동안에는 방역당국의 감시망에서 환자가 나왔다. 그런데 4일 광주에서 발생한 16번째 확진 환자는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경우다. 따라서 감염병 위기 경보를 지역사회 전파 시 발령하는 ‘심각’으로 상향해야 한다.”

―이날 시작된 중국 후베이(湖北)성 외국인 입국 금지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대상 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후베이성 외국인 입국 금지 이후 그곳에서 들어오는 내국인(한국인)을 14일간 자가 격리 조치하고 있다. 입국 금지 지역을 확대하면 그만큼 자가 격리 대상이 되는 내국인 수도 폭증한다. 요즘도 중국에서 하루 1만6000명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 중 절반가량이 내국인인데 하루 8000명씩 생기는 사람들을 보건소에서 1 대 1로 감시하는 게 가능할까. 상황이 악화되면 단계적으로 입국 금지 지역을 확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교류가 많은 나라가 중국 전체를 대상으로 그러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중국 체류 외국인 입국을 금지한 나라가 미국 호주 이탈리아를 포함해 17개국이 넘는다. 사스나 메르스 때도 없던 초유의 일인데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 아닌가.

“몇 개국만 입국을 금지하면 금지하지 않는 나라로 몰릴 가능성이 있으니 도미노 식으로 외국인 입국 금지 국가가 늘어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30일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교역 제한을 권고하지 않았다. WHO 사무총장이 기여금을 많이 내는 중국에 휘둘린다는 비난도 들린다.

“국제기구는 돈 많이 내는 나라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WHO가 교역 제한을 권고한 적은 없다. 교역을 제한하면 통제망에서 벗어난 우회로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 환자 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3일 “앞으로 7∼10일이 고비”라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로 전국에 흩어진 사람을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9일까지 연장해놓은 연휴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엄청나게 섞일 것이다. 중국 환자 수는 아직 피크에 가지도 않은 듯한데 9일 이후 급증할까 그게 가장 큰 걱정이다.”

―3월 개학을 앞두고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입국한다. 국내 중국 유학생 수가 7만 명이 넘는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의 출국 검역과 한국 쪽 입국 검역을 통과해야 하고 14일간 자가 격리를 하게 돼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유증상자를 내보내진 않는다. 혹시라도 한국에 들어온 유증상자가 확진 판정을 받게 되면 감염환자를 국경 밖으로 못 내보내도록 규정한 WHO 규약 위반이 된다. 위반해도 제재를 받진 않지만 중국이 자기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셈이 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신중하던 미국 언론이 대유행(팬데믹) 가능성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지역사회 확산 단계인 나라는 없다. 환자를 발견한 나라들은 진단검사 수준이 되는 나라들이다.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의외로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 정말 환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못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대부분 중국인이고 필리핀과 홍콩에서 1명씩 사망자가 나왔다. 우리는 안심해도 되나.

“중국은 발병한 지 오래됐고 환자가 2만 명이 넘어 병원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기 힘들다. 우리는 확진환자들이 각 병원에 흩어져 있는데 의료진이 총력을 기울여 치료하고 있다. 하지만 첫 번째 확진환자가 나온 지 보름밖에 안 됐으니 안심하기는 이르다.”

―신종 코로나는 사촌 격인 사스나 메르스와 달리 잠복기 전염에 회복기 전염 가능성까지 제기돼 불안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호흡기와 소화기 질환 바이러스의 중간적 특성을 띤다. 대체로 호흡기질환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바이러스가 퍼지고, 소화기질환은 증상이 시작된 이후에 나오는데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 사스나 메르스는 호흡기 증상을 주로 보이지만 증상이 나타난 다음부터 전파돼 관리가 쉬웠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는 두 질환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신종 코로나 환자는 완치 후 24시간 간격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해 두 번 음성이 나와야 퇴원시키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회복기 전염 가능성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문제는 잠복기 전염인데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면 방역이 정말 힘들어진다. 손 씻고 마스크 쓰고 환기 잘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고, 이런 기본적인 위생수칙을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2003년 사스 때는 국내에서 확진환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WHO가 ‘사스 예방 모범국’으로 평가했다. 2015년 메르스 때는 38명이 사망했다. 사스 때는 ‘행정의 달인’ 고건 총리가 있어 방역에 성공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던데 진짜 행정력의 차이가 피해의 차이를 가져온 것인가.


“사스 때 너무 쉽게 넘어간 것이 독이 됐다. 그땐 중국과의 교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커 개인들도 자가 격리를 철저히 했다. 그때 환자가 몇 명이라도 생겼더라면 낙후된 보건의료시스템을 점검해 제대로 고쳤을 텐데 위기를 넘기고 나니 한국 수준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고 아무것도 안 하다 메르스가 터진 것이다.”

―중국은 사스 때 본토에서만 349명이 죽었지만 이번에도 대처를 잘 못했다.


“중국은 사스를 겪은 뒤 보건의료시스템을 많이 고쳐 우리보다 좋았다. 미국 질병관리센터 같은 조직을 정비하고 역학조사관 제도를 만들고 우한(武漢)에 바이러스연구소까지 뒀다. 그런데 사스 이후 17년간 아무 일이 없다 보니 경계심이 약해진 거다. 2015년 한국 메르스 환자가 중국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몇 명이라도 환자가 나왔더라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이번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방역은 전쟁과 비슷하다. 평화가 길어지면 해이해지고,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군인들은 실전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태평성대 기간이 길어지면 군대가 왜 필요하냐는 얘기들을 한다. 지금은 방역 인력이 태부족이라고 말하지만, 전염병이 돌지 않으면 보건소에 노는 사람이 왜 이리 많으냐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은 메르스 때보다 방역 수준이 나아졌나. 확진환자의 99%가 병원에서 감염됐던 메르스 방역 인프라가 지역사회 확산형인 신종 코로나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메르스 방역의 실패 이후 역학조사관제도를 정착시키고, 음압격리병상 수를 늘리고, 응급실에 선별진료소를 만들고, 감염에 취약한 응급실 문화를 개선했다. 접촉자로 분류돼 격리된 사람들, 문 닫은 의료기관에 예산을 지원하는 제도도 메르스를 계기로 생겼다. 신종 코로나에 이만큼이라도 대응할 수 있게 된 건 그때 시스템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는 메르스와 달리 외국에서 감염된 환자들이 들어와 지역사회로 전파시키고 있다. 지역사회와 해외 유입 감염 관리에 대한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 선진국들은 전염병 발생국가에 지원 명목으로 미리 나가서 바이러스나 치료정보, 방역시스템 등에 관한 정보를 가져간다. 전염병 유행이 끝나고 나면 제약회사들이 백신 치료제 진단키트 제조 경쟁을 벌이는데 그런 정보를 이용하는 거다. 세계가 무섭게 돌아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 유행은 언제 끝날까.

“사스는 2003년 유행 후 17년간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메르스는 2012년 발병 후 지금도 중동 지역에 남아 있다. 신종 코로나가 사스의 길을 갈지, 제2의 메르스가 될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항생제와 백신으로도 전염병은 정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항생제는 내성이, 백신은 효과가 완벽하지도 않을뿐더러 새로운 감염병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역병은 사라진 게 아니고 책갈피와 방구석에 숨어 우리가 방심하길 기다리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코로나 바이러스#감염 경로#방역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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