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역행하는 靑의 검찰 직접 검증 확대[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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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검사 세평 결과 공개돼도 떳떳한지 검찰 인사 자료 모두 남겨 평가받아야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A=내부에서 대표적으로 복지부동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중요 부서로 배치, B=승진을 시도하였다가 내부의 인사 라인 반대로 무산, C=정책 대응 실패에도 아무런 문책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

2016년 3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내 파벌로 인한 난맥을 점검하라”고 지시한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문체부 국·과장급 공무원들에 대해 수집한 세평(世評) 결과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1심 재판 때 그 내용이 공개됐는데, 1심 재판부는 세평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다른 공무원에 비해 빠른 승진을 시도했다거나, 복지부동이라는 주관적인 평가에 기초하고 있고, 정책 실패라는 사유 또한 정식으로 판명된 것이 아니었다.’

헌법상 국민 전체의 봉사자인 공무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청와대 인사 검증 자료가 얼마나 부실하고, 편파적일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검찰 중간 간부 인사는 청와대의 인사 검증 관행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3일 단행된 검찰 중간 간부 승진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 행정관들이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에게 전화로 물었다는 질문 내용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기존에는 차장검사는 법무부 담당이었는데, 이번에는 검찰을 잘 모르는 경찰 출신 행정관이 질문자로 나섰다.

“검사 경력만 20년이 넘는데, 돈이 참 없으시다. 안타깝네요.”

20년 가까운 경력의 중견 검사에게 전화상으로 약 5분간 이 정도 수준의 질문을 한 뒤에 승진 여부를 가렸다는 것 자체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사건 등에 참여한 검사에게는 “어떤 역할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부적절한 것이다. 검사에게는 사실상 모범 답안이 뻔히 보이지만 소신에 반해 답변하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상 검증”이라는 지적에 청와대는 “내부 확인 결과 발견하지 못했다”고만 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질문의 수준이 아니라 청와대의 검찰 장악에 대한 과욕이다. 청와대는 관행적으로 검사장 승진 대상자에 한해 직접 인사 검증을 했는데, 이번에는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까지 범위를 느닷없이 넓혔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청와대가 일개 부처 개혁위의 말을 즉각 받아들인 게 석연찮다. 신속한 검증을 위해 청와대는 경찰에 하청을 줬고, 180명 이상의 검사 세평 기초 자료를 동시 수집한 경찰에선 “체감상 업무가 5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는 불만이 나왔다. 검사에 대한 청와대의 직접 검증이 늘면서 국세청 등 타 부처 인사 검증이 연쇄적으로 늦어졌다는 말까지 들린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부처에 위임하는 최근 추세와도 역행하는데, 청와대는 왜 그랬을까. 한 검사는 “청와대가 검찰의 중립성에 비수를 꽂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누가 인사를 하는지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실무 수사 라인까지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청와대가 감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4년 전 문체부 공무원의 좌천 인사처럼 최근 검찰 인사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형사사법 절차대로 진행하다 보면 훗날 검사의 세평 결과가 공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편파’ 세평 작성을 지시한 청와대 관계자는 그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참에 청와대의 직접 인사 검증 대상과 범위, 절차, 검증에 참여할 유관기관을 공개적인 법령으로 정하면 어떨까. 그 과정을 점검해서 문책하는 조항까지 넣어야 불행한 인사 퇴행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사회부장 정원수 needjung@donga.com
#검찰 인사#인사 검증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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