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봐줄 사람 없는데, 어린이집은 불안… 맞벌이 부모들 한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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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전국 어린이집 3188곳 문닫아
휴원 어린이집 90%가 ‘긴급보육’
부모들 일단 아이 등원시킨 뒤 친척-지인에 ‘봐달라’ 전화 돌려
문연 어린이집은 외부인 출입 막아… 야외수업 없애고 외부급식 중단도

3일 경기 고양시의 한 어린이집 출입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잠시
운영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고양=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3일 경기 고양시의 한 어린이집 출입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잠시 운영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고양=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두 시간만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올게….”

3일 오전 경기 고양시 한 어린이집 앞. 김경희(가명·38) 씨가 아들 성호(4)의 마스크를 올려 씌우면서 한참을 도닥거렸다. 잠시 뒤 보건용 마스크를 쓴 교사는 말없이 기다리다 성호를 어린이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놀이방 안에는 아이 2명만이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원래 이 놀이방에선 성호를 포함해 87명이 함께 지내왔다.

현재 이 어린이집은 공식적으로는 ‘임시 휴원’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환자가 고양시 일대를 오간 것으로 확인되자, 시가 어린이집에 휴원을 권고했다. 하지만 김 씨처럼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부모는 그대로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김 씨는 “지금부터 친척에게 전화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 한다”며 “엄마가 돈 벌겠다고 아이를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찮은 맞벌이 부모들이 신종 코로나 여파로 때아닌 ‘보육 대란’을 겪고 있다. 전국 어린이집이 10곳에 1곳꼴로 문을 닫으며 해당 부모들이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곤란에 빠졌다.


○ 긴급보육 신청하고 친척에게 전화 돌리고


갑작스럽게 휴원 통보를 받은 부모들은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긴급보육’을 신청할 수 있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긴급보육이 신청된 아이를 돌본다. 동아일보가 어린이집에 휴원 명령을 내린 4개 도(경기·충북·충남·전북)에 확인한 결과, 전체 어린이집 등원 아동(9만6067명) 가운데 1만9614명(20.4%)은 이날 긴급보육 서비스를 받았다. 휴원 어린이집 3188곳 가운데 2881곳이 긴급보육 아동을 돌봤다.

하지만 어린이집 곳곳에선 긴급보육을 신청했던 부모들이 도중에 아이를 데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모가 직장에 출근하면서 아이를 급하게 어린이집에 데려다놨다가, 뒤늦게 돌봐줄 지인이나 친척을 찾은 경우다. 충북 청주시에서 온 한 할머니는 네 살 손녀를 데려가면서 “아이가 경기 고양시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를 벗은 적이 있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 경기 고양시 한 어린이집 원장은 “부모들이 아침에 긴급보육을 신청해 아이를 등원시켰는데, 오후에 친척이 아이를 데리러 온 게 오늘 하루만 세 건”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 어린이집도 썰렁한 분위기였다. 신종 코로나 8번 환자가 사는 전북 군산시 한 어린이집은 정원 134명 가운데 9명만 등원했다. 전날까지 40가구가 아이를 맡기겠다고 했지만, 당일엔 31가구가 “불안하다”며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경기 수원시 한 어린이집도 원아 38명 가운데 2명만 등원했다.

○ 아이 데리러 온 학부모도 어린이집 못 들어가

이날 운영한 어린이집은 신종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 때문에 자녀를 집에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학부모도 어린이집 건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경기 의왕시 어린이집에 딸을 데리러 온 김모 씨(38·여)는 어린이집 건물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다. 5분 뒤 교사가 마스크를 쓴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김 씨와 교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경기 고양시 한 어린이집은 건물 바깥에서 하는 체육 수업을 없앴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원아들을 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밀착 마크’하는 곳도 있었다. 경기 고양시 한 어린이집에선 마스크를 쓴 원아들이 점심을 먹는 모습이 건물 유리창 바깥에서 보였다. 아이들은 서로 양옆을 비워 놓고 앉아 있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외부에서 들여오는 우유나 과일 급식도 중단했다”고 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관내 어린이집에 추가로 휴원 명령을 내리면서 원아들이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경기 시흥시 한 어린이집은 이날 오전 6시 30분경부터 휴원 메시지를 보냈고, 찾아온 원아들은 전부 집으로 돌려보냈다. 보건 당국으로부터 “원아가 신종 코로나 14번 환자와 접촉했다”고 전달받은 어린이집 측은 이날 문을 닫고 방역 작업에 나섰다.

고도예 yea@donga.com / 고양=김태성 / 의왕=김소민 기자


#우한 폐렴#코로나 바이러스#어린이집#긴급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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