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상 환자 초기검역 실패…정부-지자체 제각각…초기 대응 3대 허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3일 21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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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중국 우한(武漢)발 항공기를 타고 온 55세 한국인 남성이 인천공항에 내렸다. 마침 이날 한국에서는 첫 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발생해 검역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이 남성은 검역 과정에서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어떤 증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1일 몸살 기운을 느껴 경기 평택시의 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그의 우한 방문 이력을 봤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의심 환자로 신고하지 않았다. 정부의 신고 기준(발열과 호흡기 증세가 동시 발현)과 맞지 않아서다. 25일 이 남성이 다시 같은 병원을 찾아서야 보건당국에 신고됐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바로 ‘4번 환자’다.

○ 913명이 바이러스에 노출

정부는 초기부터 우한 입국자 검역을 강화했다. 하지만 2, 3, 4번 환자는 검역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발열과 호흡기 증상 중 하나만 있거나 ‘무증상’이었던 탓이다. 지역 의료기관도 정부의 느슨한 기준 탓에 이들을 조기에 포착하지 못했다. 그사이 세 환자의 접촉자는 345명으로 늘었다. 이 중 3명은 2차(6번 환자), 3차(10, 11번 환자) 감염 환자가 됐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뒤늦게 검역 기준을 강화했다. 그리고 14일 이내 우한 입국자 전수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허점이 있었다. 12번 환자(49·중국인 남성)는 일본에서 입국했다. 아예 검역 대상조차 아니었다. 12번 환자의 접촉자는 361명에 이른다. 3일까지 집계된 확진 환자 15명의 접촉자는 913명이다.

신종 감염병의 경우 정확한 특징이나 증상이 파악되기 전이라 더욱 보수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큰 병원들의 감염병 대처 능력은 크게 향상됐지만 동네병원, 보건소는 대책에서 소외됐다”며 “신종 코로나는 지역사회 감염이 주 감염 경로이기 때문에 동네병원과 보건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중앙과 지방이 제각각 대응

2일 경기 부천시는 12번 환자의 동선을 공개했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아직 역학 조사 중’이라며 공개하지 않은 정보였다. 앞서 환자 5명이 추가된 지난달 31일에도 질본은 동선과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지역 보건소가 자체적으로 정보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담긴 공문이 온라인에 유포됐다.

중앙부처끼리도 불통(不通)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한 교민을 태우고 귀국하기로 한 임시항공편 출발을 앞두고 “유증상자도 태울 수 있다”고 발언했다가 정정했다. 외교부가 중국과 협의가 되지 않은 건이라며 부인해서다. 우한 교민을 격리할 시설이 충남 천안에서 아산과 충북 진천으로 바뀌면서 혼란을 자초했다.

이재갑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보건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감염병 전문가들이 모인 질본에 전권을 주고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행정안전부 관할인 보건소도 위기 상황에서는 전적으로 질본의 통제를 받고 대외 창구도 일원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첫 번째 환자 1주일 후 나타난 중수본

질본은 27일 감염병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그제야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꾸려졌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감염병 위기경보가 ‘경계’로 격상됐으면 그에 준하는 방역인력 충원, 신속한 진단검사, 입국 제한 조치가 곧장 따라왔어야 한다”며 “그런데 중수본 출범 6일 후에야 입국 제한이 결정된 건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정부와 지자체만으로 확산을 막기 힘들다는 의견이다.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자진 신고나 자가 격리 대상일 때 반드시 규정을 준수하는 시민의식이 동반돼야 지역사회 유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우주 교수는 “감염병 예방은 개인의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한다”며 “위생수칙을 잘 지키고 정부가 내린 자가 격리 지침 등을 잘 따라주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강동웅기자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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