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피부[간호섭의 패션 談談]〈3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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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살았으나 선악과를 먹은 후 수치심을 알게 되어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리게 되고 후에 짐승의 가죽이 입혀진 채 에덴동산에서 추방됩니다.

어느 종교를 믿는가를 떠나 이는 의복의 기원설과 관련이 깊습니다. 인간 문명이 발달할수록 의복이란 도구를 통해 인간이 수치심을 덜어내게 되고 장식의 개념을 통해 사치심을 자극하는 발전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기후환경 변화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더운 지역에서는 수치심만을 해결하기 위해 무화과 잎 한 장도 충분하지만 추운 지역에서는 짐승의 가죽과 같이 혹한의 자연환경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의복 재료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문명 간 충돌이 일어나면서 그 극단적인 결과물은 전쟁이었습니다. 창과 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갑옷이 발명되었죠. 창과 칼이 대포와 총으로 바뀌면서 가볍고 빠른 이동을 할 수 있는 방탄복이 개발됐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몸매 보정 속옷처럼 입을 수 있는 부드러운 소재의 방탄복 내지는 방탄섬유로 직조돼 일반 옷과 쉽게 구별할 수 없는 방탄복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뿐일까요? 사고나 산업현장에서 화마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방화복, 다양한 오염원인을 막는 방진복, 유해한 바이러스의 접근을 차단하는 방균복 등이 있죠. 이 모두가 극한의 환경에서 인체를 보호하는 공통점이 있고 그 모두가 의복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새로 개발되는 의복들을 보면 피부와 더욱 닮아가고 있습니다. 숨을 쉬는 섬유라고 해서 물기는 차단하고 습기는 배출하는 기능은 이미 보편화되었고 이제는 10억분의 1을 뜻하는 미세한 나노공학 기술을 적용해 피부의 분자구조를 재현해내는 섬유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상어의 비늘 구조를 나노 기술로 재현해 만든 전신수영복은 초를 다투는 기록경기에 큰 기여를 했지만 인간의 한계를 기술로 무너뜨렸다는 오명을 남기면서 2010년부터는 모든 국제대회에서 착용이 금지됐습니다. 그럼에도 제2의 피부와 같은 이 첨단기술은 앞으로도 자외선 차단제 같은 화장품, 먹어서 흡수되는 식품이나 의약품 등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합니다.

피부는 인체의 모든 부분을 감싸면서 외부 환경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첫 관문입니다. 이를 통해 체온의 조절과 호흡, 땀과 오염물의 배출이 이루어졌고 이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 바로 제2의 피부인 의복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제2의 피부라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복은 이제 투박한 갑옷에서 점점 진화돼 피부와 동일시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미세먼지와 바이러스를 막아줄 마스크와 방균복을 대신해 온몸을 코팅한 피부의복 하나로 언제 어디든 맘 놓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을요.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의복#갑옷#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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