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꿈꾸면 청년의 미래가 열린다[동아 시론/이정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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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층 800만, 성큼 다가온 초고령사회
해외선 ‘장수인’의 경제활동 강조하지만
한국의 노인대책은 보호 수준에 머물러
신세대와 구세대 시너지 높일 방안 필요

이정재 서울대 명예교수
이정재 서울대 명예교수
나이가 들고 행동이 둔해지면 늙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노화는 사람도 세월에 따라 냉장고나 TV처럼 약해지고, 쓸모가 줄며, 퇴화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전통과 경험을 보내고, 새로움과 새 기술로 변모하는 송구영신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 논리가 장수를 연구하는 박상철 교수로 인해 깨져 버렸다. 박 교수는 “왜 늙은 세포가 젊은 세포보다 자외선에 더 오래 견디고, 왜 늙은 생쥐가 젊은 생쥐보다 역경에 잘 견디는지 아는가?”라고 묻고는 연구의 결과를 귀띔해 주었다. 어린 세포는 세포막이 투명해서 외부의 강한 자극에 쉽게 파괴된다. 그래서 세포막을 반투명하게 하여 수명을 연장하는데, 이 현상이 노화이고 고등생물인 생쥐도 늙어야 고난에 잘 견딘다고 했다. 노화는 ‘오래 살기 위해 생명이 선택한 진화’인데 그 대가로 얻은 것이 ‘인내와 느림’인 거다.

노인은 국가가 돌봐야 하는 65세 이상 국민으로 2020년 현재 800만 명에 이른다. 800만 명은 전 인구의 15.7%, 경제활동인구의 28%, 유권자의 20%나 된다. 이미 농촌은 노인 인구비가 30%를 초과한 곳이 많지만 베이비부머가 은퇴하는 앞으로 20년 내에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노인 인구비가 20%가 되는 초고령시대가 온다. 30년 뒤에는 경제활동인구와 노인 인구가 2000만 명으로 같아져 젊은이 한 사람이 노인 한 사람을 부양해야 할 터이다.

정말 노인은 돌봐야만 하는 분들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 스스로 노인이라고 느끼는 연령은 75세 정도인데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다. 85세 이하 노인의 90%가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 없이 건강하다. 또 노인들은 생활비 62%를 스스로 충당한다. 대부분이 생계 때문에 계속 일하고 싶어 한다. 60대 노인들도 89%가 4차 산업 사회의 엔진이 되는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기술에 익숙하다. 여기에 97%가 고졸 이상이고 75%가 자기 집을 가진 자산가로 경제 흐름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 값진 경험과 지혜를 갖추고, 역경을 잘 극복하며, 일하고 싶어 하는 근로인을 경계 밖의 사람을 만드는 것은 국력 낭비에 그치지 않고 미래세대의 짐을 키우는 것이다.

대통령도 금년 신년사에서 아이를 키우며 일하기 좋게 하고, 여성·청년·어르신의 노동시장 진입도 촉진하겠다고 했다. 세계경제포럼(WEF) 같은 싱크탱크도 이미 2015년에 장수인의 경제 참여, 장수친화적 사회의 건설, 장수인의 자립성 강화를 통해 고령사회가 새로운 경제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우리나라의 노인정책은 아직도 보호대책이 중심인 고령사회(Aged Society) 정책이다. 몇몇 선진국에서는 나이에 의한 장벽과 차별을 극복하여 노인을 생산영역에 머물게 하는 고령친화사회(Age Friendly Society)를 지향하고 있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 연구소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과 기계가 원활히 결합되면 노화현상이 극복될 것임을 들어 나이가 사라진 장수사회(Age Free Society)로의 전환을 서두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산업혁명이 있었다. 그때마다 인류는 전통을 새 기술에 맞춰 재해석함으로써 커다란 사회 변혁을 이뤄냈고, 열강의 순서를 바꾸었다. 그러나 먹고, 입고, 살아가는 의식주 행위 그 자체는 구석기인과 현대인 사이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삶과 관련 없는 신기술은 의미가 작다. 소식을 전하는 일에 무선기술이 접목돼 스마트폰 시대가 되듯, 사회 변혁은 전통을 새 기술로 빚은 ‘새 술’이기 때문일 게다.

늦기 전에 빠르고 과감한 신세대와 지혜롭고 끈기 있는 구세대가 시너지를 이루어 4차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되도록 안전한 자산투자처를 만들고, 직업별 휴먼네트워크의 열린 장에서 아이디어가 교환되게 하며, 경험에 새 기술이 더해지도록 교육하고, 지식이 자산이 되게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당연히 법과 규정으로 노인도 안심하고 참여하도록 하여 걱정 많은 노인들도 사회 발전을 위해 기꺼이 역량을 보탤 수 있게 멍석을 깔아 주자.

‘갈매기의 꿈’에서 리처드 버크는 나이가 들며 약해지는 대신 오히려 더 멀리 날 수 있고 많은 것에 통달해 있는 늙은 치앙을 통해, 빨리만 날고 싶어 하는 젊은 조나단에게 “천국은 어떤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고 완전함”이라고 설파한다.

오래 사는 것은 어떤 나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해지고자 하는 노력과 염원이 신화로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오래 다져온 꿈과 폭발하는 젊음이 결합하는 장수사회를 이루어 세계를 이끌어 보자.

 
이정재 서울대 명예교수


#초고령사회#노인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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