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 거듭된 판단 착오… 추적-격리 어려운 3차감염 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국내 초기 방역망 구멍 숭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2차 감염에 이어 3차 감염까지 발생하면서 국내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 보건 당국이 초기 방역 과정에서 실수를 거듭하면서 확산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3차 감염부터 추적이나 격리가 어렵기 때문에 접촉자 관리 기준 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 3번 환자 놓치고 뒷북친 보건 당국

3번 환자(54)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지난달 20일 국내로 들어왔다. 아무 증상이 없어 공항 검역대를 그대로 통과했다. 22일 오후 1시에는 약국에서 해열제를 샀다. 저녁에는 6번 환자와 또 다른 동창 A 씨 총 세 명이 서울 강남구 한일관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어 26일 근육통 악화로 보건소를 찾은 끝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질본) 역학조사관은 3번 환자의 증상 시작 시점을 22일 오후 7시로 정했다. 카드 사용 내역을 통해 그 전에 약국에서 해열제를 구매한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질본은 역학조사관의 판단을 믿고 증상 시작 시점을 바꾸지 않았다. 질본 관계자는 “3번 환자가 건강 염려증이 심해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약을 사먹은 것을 감안해 정한 것”이라며 “칼로 무 자르듯 하는 기준은 없고 숫자로 만들어진 구체적인 체크리스트도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질본은 29일 시간을 ‘오후 1시’로 바꿨다. “다시 조사해 보니 3번 환자의 진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뒤늦게 일상접촉자 4명이 추가돼 그제야 모니터링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역학조사관의 판단이었다.

○ 접촉자 분류 실수 탓에 3차 감염


6번 환자(55)는 22일 저녁 3번 환자, A 씨와 함께 불고기와 냉면 사리를 나눠 먹었다. 가로 90cm, 세로 90cm 정사각형 테이블에 앉았으며 식사는 1시간 33분 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질본은 애초 6번 환자를 일상접촉자로 분류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면 자택에 격리됐을 터였다. 이렇게 되자 도미노처럼 3차 감염도 연달아 일어났다. 질본의 엉터리 분류로 6번 환자가 거리낌 없이 가족과 접촉한 탓이다. 31일 발표된 3차 감염자 2명은 6번 환자의 가족이다. 게다가 이 중 한 명은 30일까지 직장에 출근했다. 4차 감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은경 질본 본부장은 “6번 환자 접촉의 강도를 재분류했어야 하는데 보건소에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아 일상접촉자로 관리했던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질본의 판단 착오뿐 아니라 일선 보건소와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질본은 A 씨도 일상접촉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6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자 부랴부랴 밀접접촉자로 신분을 바꿨다. 보건소에 “A 씨도 검사해 보라”고 지시한 끝에 A 씨는 검사를 받게 됐다.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질본의 해외 방문 이력 관리가 엉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병원에서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 시스템에 우한을 다녀온 적이 없는데 우한을 다녀왔다고 뜨는 등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반대로 우한을 다녀왔지만 다녀오지 않았다고 뜰 가능성도 있는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주먹구구 검사 기준

증상 발현 후 검사받는 절차의 기준 또한 모호해 현장에서는 혼란을 느끼고 있다. 예컨대 어떤 유증상자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원에서 격리되는 반면 다른 유증상자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택에 돌아가 대기하다가 확진을 받으면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 4번 환자 또한 질본의 발표 자료와는 다르게 보건소에서 바로 병원으로 이동하지 않고 자택으로 돌아가 대기한 뒤 결과를 통보받고 구급차를 통해 병원에 입원했다.

질본 관계자는 “증상이 심하면 바로 입원시켜서 검사하고 그렇게 심하지 않으면 자택에 보냈다가 검사 결과가 나오면 입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상의 정도에 대한 판단도 역학조사관의 재량에 맡기기 때문에 오락가락이라는 지적이 많다.

○ 연락 안 되는 우한 입국자 700명

앞으로 방역 관리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질본은 지난달 13∼26일 우한시에서 국내로 입국한 내외국인 2991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시행 중이다. 내국인 1160명 중 출국자를 제외한 1085명과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이 중 384명(35%)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겨우 연락이 닿아도 조사는 쉽지 않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전화해 증상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전화를 귀찮게 여기거나 받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외국인 관리는 더 어렵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398명은 80명만 연락처가 파악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조사에 착수했지만 서울시는 우한시에서 들어온 외국인이 얼마나 있는지 명단을 받지 못했다. 질본은 법무부, 경찰 등에 협조를 요청해 소재지를 파악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 사이 외국인들에게 의심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정부가 이들을 관리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송혜미·박성민 기자
#우한 폐렴#코로나 바이러스#3차 감염#3번 환자#밀접접촉자#방역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