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매화[이준식의 한시 한 수]〈43〉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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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와 눈, 봄빛을 겨루며 서로 지지 않으려 하매/시인이 붓을 놓고 우열을 따져본다. 흰 빛깔은 매화가 눈에 조금 뒤지고/향기라면 아무래도 눈이 매화를 못 이기지.(梅雪爭春未肯降, 騷人閣筆費平章. 梅須遜雪三分白, 雪却輸梅一段香.) ―‘눈과 매화(설매·雪梅)’(제1수)·노매파(盧梅坡·송 말엽·생졸 미상)

설중매(雪中梅)라 하듯 눈과 매화는 서로 인연이 각별하다. 둘은 아삼륙이 되어 모진 한파를 함께 견뎌냈다. 한데 봄기운이 돌면서 둘은 제각기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며 ‘서로 지지 않으려’ 다투고 있다. 중재에 나선 시인은 선뜻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가 난감하다. 고심 끝에 무승부로 타협한다. 빛깔 하면 눈이요, 향기라면 매화라 했으니 어느 한쪽도 서운하진 않겠다. 눈과 매화는 그렇게 오순도순 혹은 티격태격하며 봄의 길목에 들어섰다. 저들의 빛깔과 향기에 시인의 화답이 없을 수 없다. 시인은 제2수에서 다시 대타협을 도모한다. “매화만 있고 눈이 없다면 운치가 없고/눈만 있고 시가 없다면 저속하리니. 저녁 무렵 시 짓고 나자 눈이 내리고/매화까지 꽃을 피우니 제대로 된 봄이지.”

이른 봄에 피는 매화는 희고 맑은 빛깔 때문에 곧잘 눈과 혼동을 준 듯 시인들은 더러 헛갈렸던 경험을 시에 담았다. 송 왕안석(王安石)은 ‘매화’에서 “담 모퉁이 몇 가닥 매화, 추위 속에 저 홀로 꽃을 피웠네. 멀리서도 그것이 눈이 아님을 안 건, 은은하게 전해지는 향기 때문이지”라 했고, 당 장위(張謂)는 ‘조매(早梅)’에서 “한 그루 매화 백옥처럼 흰 가지, 시골길 개울의 다리 곁에 서 있다. 매화가 물 가까이 있어 일찌감치 꽃 피운 줄 모르고 다들 겨우내 녹지 않은 눈인가 여기네”라 했다.

시인 노매파(盧梅坡)의 행적은 알 길이 없으나 유난히 매화를 사랑한 때문에 매파라는 호(號)를 지었으리라 추정한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눈과 매화#이준식의 한시 한 수#설중매#노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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