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벤처 붐… 투자액 처음 4조 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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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 ‘디앤디파마텍’은 지난해 4월 국내와 해외 벤처투자자로부터 1400억 원을 유치했다. 디앤디파마텍은 이슬기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가 부친인 이강춘 성균관대 약학부 석좌교수와 함께 2014년 창업한 회사다. 아직 출시 전이지만 마땅한 치료제가 없던 퇴행성 뇌질환 신약이라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사가 유치한 1400억 원 가운데 정부 기준에 따라 집계한 벤처투자액은 830억 원으로 국내 벤처기업이 연간 유치한 역대 최대 액수다.

벤처업계는 국내 벤처기업에 굵직한 투자가 몰렸던 지난해를 ‘제2의 벤처붐’의 원년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벤처투자액과 2018년 기준 에인절투자액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만 보면 네이버와 다음, 싸이월드 등 국내 인터넷 기업이 탄생했던 2000년 전후 ‘제1차 벤처붐’ 때를 넘어섰다.

○ 지난해 벤처투자액 4조 원대 첫 진입

29일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한국엔젤투자협회가 발표한 ‘2019년 벤처투자 및 2018년 에인절투자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기업에 신규 투자된 금액은 4조2777억 원으로 2001년 통계를 집계한 이후 처음 4조 원대에 진입했다. 개인투자자 등이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에인절투자액은 2018년 기준 5538억 원으로 2017년(3235억 원)의 1.7배로 늘었다. 전 국민이 벤처기업 투자에 나설 만큼 과열됐던 2000년 에인절투자액(5493억 원)을 18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에인절투자액의 경우 집계하는 데 3년이 걸리기 때문에 2018년 수치가 최신 잠정 통계다.

최근 벤처붐은 투자 규모뿐만 아니라 투자 방식과 성향 면에서 제1차 벤처붐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 전후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인터넷을 활용해 창업에 뛰어들고 성공 스토리를 만들면서 벤처투자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벤처투자에 대한 제도적 장치나 전문가가 거의 없어 일명 ‘묻지 마 투자’가 성행했다. 이후 벤처기업 거품이 빠지면서 2000년을 기점으로 벤처투자액과 에인절투자액은 쪼그라들었다. 투자 리스크가 큰 에인절투자액은 2010년 341억 원으로 10년 전의 6% 수준으로 급감했다.

벤처투자가 살아나기 시작한 건 2012년부터 성공한 벤처 1세대가 후배 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해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부터다. 2013년 들어선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강조하면서 창업과 투자를 독려한 것도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2000년 전후 벤처기업에 대한 거품과 비정상적인 투자가 많았지만 성공한 벤처 1세대가 투자에 나서면서 이제야 투자가 정상화됐다”며 “지금은 자산가들이 부동산이나 주식이 아닌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벤처기업과 초기 창업기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8년부터 에인절투자에 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한 것도 에인절투자가 늘어난 요인 중 하나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해 벤처투자액이 늘면서 한국이 4대 벤처투자 강국이 됐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벤처투자액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2%로, 미국(0.4%)과 이스라엘(0.38%), 중국(0.27%)에 이어 세계 4위로 2018년보다 한 계단 상승했다.

○ 향후 투자금 회수가 숙제

양적, 질적 성장의 이면에는 벤처투자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벤처투자액이 늘고 유니콘 기업(자산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기업)이 11개로 늘면서 규모는 커졌지만 국내에서 투자금을 회수할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니콘 기업의 가치가 국내 상장된 대기업 계열사만큼 커졌는데, 국내 증시에서는 이런 기업이 상장해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며 “투자금 회수에 대한 우려가 조만간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벤처기업들이 국내 증시보다 해외 증시에 상장하거나, 우아한형제들처럼 해외 기업 매각을 선호하는 걸 두고 국부 유출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고 회장은 “국내 증시가 해외에 비해 저평가되다 보니 기업으로선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벤처기업#투자#벤처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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