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시설 바꾸며 가스 막음장치 안해… 역시나 안전은 줄줄 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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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펜션참사, ‘강릉 펜션’ 닮은꼴
업주가 객실 가스레인지 직접 철거, LP가스 새어나와 폭발 추정
숙박업소 등록안해 정기점검 제외… 소방서 ‘불법’ 통보에도 市는 방치
가스공급업체는 객실내 점검 안해

설날 6남매의 비극…CCTV에 잡힌 동해 펜션 가스폭발
25일 강원 동해시 토바펜션에서 일가족 7명이 가스 폭발로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사고는 일차적으로 가스 배관을 방치한 펜션 업주의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고질적인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부실 및 관련 업체의 부실 점검 등 구조적인 문제도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뭣보다 이번 사고는 2018년 12월 강원 강릉시 펜션에서 가스가 누출돼 고교 3학년 10명이 피해를 입었던 ‘강릉 펜션 사고’와 닮았다. 당시에도 무자격자가 보일러 설비를 잘못 시공해 배기통 사이로 가스가 퍼져 나왔다. 마찬가지로 가스공급 업체는 이런 부실을 점검하지 못했고, 지자체는 점검 결과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


○ 펜션 업주, 가스레인지 철거하며 배관 방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26일 강원 동해시 토바펜션에서 가스폭발 사고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합동감식을 했다. 25일 
오후 7시 46분경 이 펜션에서 가스가 폭발해 일가족 가운데 6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동해=뉴스1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26일 강원 동해시 토바펜션에서 가스폭발 사고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합동감식을 했다. 25일 오후 7시 46분경 이 펜션에서 가스가 폭발해 일가족 가운데 6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동해=뉴스1
동해경찰서 등에 따르면 업주인 남모 씨는 지난해 11월 사고가 난 객실 가스레인지를 직접 철거했다. 전기레인지(인덕션)를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남 씨는 가스통과 연결된 배관 끝을 규정대로 막지 않았다. 현행법에선 사용하지 않는 배관 끝은 가스가 새지 않도록 ‘플러그’나 ‘캡’ 등으로 막아야 한다. 남 씨는 경찰 조사에서 “배관 끝에 고무호스가 달려 있었는데, 가스가 새지 않도록 이 호스를 묶어뒀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펜션 이용객들이 가스 밸브를 열면 언제든 배관을 통해 가스가 방 안에 퍼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사고가 난 25일 오후 7시 46분경에도 객실 안 가스 밸브가 열려 있었다고 한다. 숨진 이모 씨(70·여)를 포함한 일가족은 객실에 딸린 발코니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펑’ 소리와 함께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경찰은 배관 끝에서 새어나온 가스가 휴대용 가스레인지 불꽃과 만나 폭발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 숙박업소 신고 안 해 가스공사 정기 점검서 누락

막음 처리 안한 가스배관 가스가 누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펜션의 가스 배관. 한국가스안전공사 제공
막음 처리 안한 가스배관 가스가 누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펜션의 가스 배관. 한국가스안전공사 제공
토바펜션은 그동안 한 차례도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점검을 받은 적이 없다. 남 씨가 시에 ‘숙박업소’로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펜션 등 숙박업소의 가스 설비를 1년에 한두 번씩 정기 점검해야 한다. 업주는 사고가 난 펜션 건물을 ‘다가구주택’이라고 시에 알렸다. 경찰은 남 씨가 2011년 무렵부터 건물을 개조해 숙박시설을 운영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지난해 12월 특별 점검에서 이 펜션을 불법 숙박업소로 적발했다. 하지만 시는 이런 사실을 전달받고도 한 달 넘게 행정 조치를 하지 않았다. 동해시 관계자는 “당시 소방은 300여 곳을 불법 업소라고 통보했다”며 “한 달 만에 업소 300여 곳을 둘러보고 조치하기엔 담당 인력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 가스공급 업자는 건물 외부만 ‘겉핥기’ 점검


사고가 난 펜션 같은 다가구주택의 가스 설비는 민간 가스공급 업자가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이 펜션에 가스를 공급하는 T가스는 지난해 객실의 가스 설비를 점검하지 않았다. T가스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4월과 12월 무렵 건물에 가스를 공급하러 가서 시설을 점검했는데 외벽 계량기만 확인했다”며 “객실에 투숙객이 있으면 안에 들어가서 점검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가스공급 업체의 점검 결과를 감독해야 할 동해시는 공급 업자들이 건물 바깥만 점검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현행법은 가스공급 업체가 1년에 한두 번 가스를 공급하는 건물의 보일러와 배관 등을 점검하고 이 기록을 시나 구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T가스가 시에 사고 펜션에 대한 점검 결과를 보고한 적이 없다”며 “가스공급 업체가 특정 건물의 점검 결과를 빠뜨리고 보고해도 시에서 알 방법이 없다. 시가 업체의 거래처 명단을 점검 보고서와 대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도예 yea@donga.com / 동해=이인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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