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가죽제품은 소개 안해요” 친환경 고집하는 패션잡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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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년 ‘오보이’ 김현성 편집장

10년 치 ‘오보이’ 책장 앞에 선 김현성 편집장과 반려견 뭉치. 7년 전 사과상자 속에 버려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데려왔다. 김 씨는 “개와 함께 살기 전에 거의 모든 개가 주인보다 먼저 늙어 병을 앓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10년 치 ‘오보이’ 책장 앞에 선 김현성 편집장과 반려견 뭉치. 7년 전 사과상자 속에 버려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데려왔다. 김 씨는 “개와 함께 살기 전에 거의 모든 개가 주인보다 먼저 늙어 병을 앓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서울 마포구 상수동 골목. 라이프스타일 격월간지 ‘오보이!(OhBoy!)’ 사옥 앞에 이따금 교복 입은 학생들이 몰려든다. 그달 표지모델 아이돌의 팬들이다. 잡지를 품에 안고 돌아간 학생들 중 몇몇에게서 “환경과 동물 보호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읽고 관심이 생겼다”는 메일이 오곤 한다. 오보이 김현성 편집장(50)은 “그 작은 반향이 오보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이 동물과 환경 보호에 애써 봤자 ‘악화일로의 대세’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고 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과 0.001%라도 있는 것은 분명 다르다. ‘좋아하는 스타가 전한 메시지를 읽은 뒤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기로 했다’는 학생들의 말을 통해 그 믿음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한다.”

지난해 12월 창간 10주년을 맞은 오보이는 패션 관련 인물과 제품 정보를 다루지만 모피나 가죽을 쓴 상품의 노출은 최대한 피한다. 공정무역과 친환경 방식의 생산을 추구하는 업체를 주로 알리며 광고와 판매 수익의 일부를 영세한 동물과 환경 보호 단체 지원에 쓴다.

콘텐츠는 그때그때 다채롭게 변화한다. 2014년 12월에는 한국을 찾아온 영국 동물학자 제인 구달(86)을 표지 모델로 삼고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2017년에는 지속 가능성 가치를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 NAU의 본사가 있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찾아가 그곳의 동물보호소, 채식 전문 쇼핑몰의 모습을 소개했다. 맛집과 명소 탐방기도 풍성하게 전했다.

“이야기는 재미있게, 메시지는 은은하게 담으려 노력한다. 어떤 자리에서든 동물과 환경의 소중함에 관해 대화할 때 일방적 강요나 설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강한 어조로 표현하면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키기 쉽다.”

‘오보이’ 지난 호 표지들. 동물과 환경이 처한 위기를 접한 경악의 감탄사(OhBoy!)를 제목으로 했다.
‘오보이’ 지난 호 표지들. 동물과 환경이 처한 위기를 접한 경악의 감탄사(OhBoy!)를 제목으로 했다.
김 편집장은 달걀만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지만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는 별도의 메뉴를 찾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 때문에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명절 때 어머니께서 ‘선물로 들어왔다’며 고기를 주시면 맛있게 먹는다. 자식 건강이 걱정돼 사 오신 것일 테니까”라고 말했다.

소녀시대, 2PM 등과 작업한 패션사진작가인 그가 동물과 환경 보호를 삶의 최우선 가치로 품게 된 건 11년 전부터다. 그림과 패션을 막연히 좋아하며 성장해 1997년 사진작가로 데뷔한 뒤 “세상이나 인생에 대해 심각한 고민 없이, 그저 남들만큼 돈 벌며 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결혼 후 10년 동안 함께 지낸 반려견 먹물이와 밤식이의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꿨다. 2009년 먹물이를 화장하고 나서 김 편집장은 수개월을 넋 나간 듯한 상태로 지냈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돼준 개들을 기억하기 위한 잡지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오보이를 기획한 뒤 그의 삶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유기견이었던 뭉치와 유부, 새끼 때 버려진 고양이 도로가 2013년부터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21일 나온 오보이 최신호 표지 모델은 영화 ‘본’ 시리즈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미국 뮤지션 모비(55)다. 모비는 30년 넘게 엄격한 채식 생활을 유지하면서 동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강연 활동 등을 펼쳐 왔다. 김 편집장은 “한국의 대중 스타들도 동물과 환경을 위해 조금만 더 영향력을 발휘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오보이!#김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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