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시민 “당국 보고, ‘우한 폐렴’ 환자 수치 축소됐다고 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1일 1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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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 의료진 감염 감추던 중국 당국, 뒤늦게 “15명 확진”
“사람 간 전염 위험 낮다”더니 중국 전문가 “사람 간 전염 확실”
21일에도 상하이서 추가 확진 환자 발생, 중국 내 219명으로 증가


취재진이 21일 찾은 감염병 전문 병원인 베이징(北京) 북부 디탄(地壇)병원 발열과에는 발열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꽉 차 있었다. 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병원 관계자들은 병원에 온 환자들에게 “체온 37.5도가 넘으면 발열과 진료를 받으라”고 안내했다. 베이징시는 ‘우한 폐렴’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이곳에서 격리 치료 중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20세 여성은 “(우한 폐렴 우려 때문에)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못하겠다”고 호소하면서 “(당국이) 보고한 (확진 환자) 수치가 축소됐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량 전염을 막기 위해)중국 당국이 대규모 춘윈(春運) 운영을 피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춘윈은 춘제(春節·중국의 설)을 전후한 중국인들의 대이동을 위해 중국 당국이 철도 등 교통편을 관리 운영하는 것을 가리킨다. 뉴(牛)모(49·여) 씨는 “(전염 상황이) 너무 걱정된다. 위기감이 크다”며 “외지인이 베이징에 오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다. 이날 베이징 시대 편의점과 약국에서 팔리는 마스크는 동이 났다.

● “우한 간 적 없는 인도인 교사도 발병”

중국 당국은 이날 뒤늦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한 폐렴’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의료진 15명이 폐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사람 간 전염의 결정적인 증거인 의료진 감염까지 숨긴 당국의 은폐·축소 대응에 관영 매체들마저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이날 “의료진 1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1명이 의심 환자로 분류돼 격치 치료 중”이라며 “1명은 위중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마저도 우한시 어떤 병원 의료진이 언제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 구체적인 정보는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20일 밤 중난산(鐘南山)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고위급 전문가팀장이 일부 중국 매체들 인터뷰에서 “환자 1명에 의해 우한시 의료진 14명이 감염됐다”고 밝힌 뒤에야 핵심 정보는 빼놓은 채 의료진 감염 사실을 부랴부랴 공개한 것이다.

중 팀장은 “광둥(廣東)성 확진 판정 환자 2명은 우한에 가지 않고도 가족에게서 감염됐다. 사람 간 전염이 확실히 존재한다”며 “사람 간 전염과 의료진 감염 상황은 (환자 수 증가에)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 밝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이때까지 “사람 간 전염 위험이 비교적 낮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에서 우한을 다녀온 부모가 우한에 가지 않은 딸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사실이 확인됐다. 인도 통신사인 PTI에 따르면 우한을 간 적 없는 광둥성 선전(深¤)시 국제학교 교사인 인도인 프리티 마헤시와리(45·여) 씨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우한시 당국은 확진 판정을 받은 89세 남성이 19일 오후 11시 39분 사망해 사망자가 4명으로 늘어났음에도 이를 하루가 꼬박 지난 뒤인 21일 오전에야 공개했다. 우한시 당국은 20일 3번째 사망자 발생 사실을 알리면서 사망자 신원은 물론 언제 숨졌는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상하이(上海) 당국은 21일 2번째 확진 환자가 나왔다고 밝혔지만 이 환자는 이미 16일부터 격리 치료를 받고 있었다.

● 칭다오·허페이에서도 의심 환자 추가 발생

관영 신징(新京)보는 사설에서 “우한시는 왜 의료진 감염 사실을 빨리 밝히지 않았는가”며 “의료진들이 언제 감염됐는지, 언제부터 감염이 의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예방 통제를 제대로 실시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고 투명한 정보 제도를 통해 민중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시진(胡錫進) 환추(環球)시보 편집장도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에 글을 올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왜 일찍 발표하지 않았는가”라며 “중난산이 의료진 감염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면 계속 감추려 했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당국은 20일에야 ‘우한 폐렴’을 ‘전염병 방지 집행법’ 상의 법정 전염병에 포함시켰다. 법정 전염병이 돼야 정부 의료 기관이 환자를 격리 치료하는 등 통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처음 ‘우한 폐렴’ 환자 발생 사실을 공개한 뒤 20여 일간 법적 근거도 없이 대응해 왔다는 얘기다.

한편 중국 당국에 따르면 이날 상하이에서 확진 환자 1명이 추가로 발생해 중국 내 확진 환자는 219명으로 늘어났다.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와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안후이(安徽) 허페이(合肥)에서도 각각 의심 환자 1명씩 발생했다. 칭다오는 한국 교민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홍콩에서도 의심 환자 7명이 추가로 나왔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zeitung@donga.com
베이징=권오혁 특파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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